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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중동과 아프리카에 불어닥친 '아랍의 봄' 열풍이 두 독재자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했다. 최근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두 나라의 국민들은 민주화 열기의 불씨를 살려내는 대신 '군부 독재'라는 안정을 택했다.
◈이집트 새 대통령에 軍 실세 엘시시 당선
이집트 국민들은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축출을 주도한 압델 파타 엘시시(60) 전 국방장관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지난달 26~28일 치러진 대선에서 엘시시는 96.91%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이 확정됐다. 1950년대 공화국 체제 출범 이후 5번째 군 출신 대통령이다.
이번 대선은 무르시 축출 사태 이후 11개월 만에 치러졌다. 무르시는 2011년 민주화 시위 당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퇴진 이후 실시된 대선에서 뽑힌 첫 민선 대통령이었다. 무르시가 쫓겨나자 무르시 지지자들은 엘시시를 쿠데타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고 반대 시위를 전개해왔다. 군부의 무력진압 과정에서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엘시시는 3일(현지시간) 당선이 확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제 이집트 재건을 위해 일해야 할 시간"이라며 "노동이 이집트에 더 나은 미래와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타흐리흐 광장에서는 수천명이 운집해 엘시시 당선을 축하하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아랍의 봄 이후에도 생활상의 변화를 못 느낀 이집트 국민들은 독재의 위험이 따르더라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원했다. 이들에게는 민주화보다도 이집트 경제 부흥을 외치는 엘시시 같은 지도자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엘시시는 대선 출마 당시 "군은 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엘시시의 정치적 파고도 예상된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47.45%로, 무르시가 출마했던 대선 결선 투표율 52%보다 4%포인트나 낮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가 당초 이틀 동안 열리는 대선을 하루 더 연장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대선 과정에서부터 공정성 시비를 낳은 것이다.
엘시시의 유일한 적수였던 함딘 사바히 후보는 일부 투표소에서 각종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묵살 당했고, 무르시 지지 세력은 대선 결과에 불복하며 '제3의 혁명'을 촉구했다. 이런 태생적 한계에 부딪친 엘시시가 반대파 의견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라도 무바라크 정권처럼 군사 독재 정권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내전' 시리아에선 '독재자 집안' 알아사드 3선 확실시3년 넘게 이어진 내전으로 15만명이 숨진 시리아에서도 3일 대선이 실시됐다. 아직 모든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바샤르 알아사드(48) 대통령이 3선에 연임될 것이 확실시된다.
7년 임기의 대통령에 또 다시 당선되면 그는 29년 동안 집권했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60년 동안 시리아를 통치하게 된다. 공화정을 실시하는 아랍권 국가 가운데 2대째 장기 독재를 이어가는 국가는 시리아가 유일하다.
이번 대선은 아사드 대통령이 당선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반쪽짜리' 선거다. 반군이 장악한 동·북부 지역에서는 아예 투표함이 설치되지 않았다. 이런 명분쌓기용 대선에 대해 반군측은 "이번 대선은 지지율이 99.8%냐 99.9%냐의 문제"라고 비꼬았다. 시리아 국민 300만명이 해외로 떠나고 국내 피란민이 600만명에 달하는 상황 탓에 CNN은 "역사상 가장 괴이한 민주주의의 패러디"라고 촌평했다.
아사드가 당선되면 시리아 내전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한 아사드 대통령이 대대적인 반군 진압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이번 대선을 '소극(笑劇)'에 비유하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 사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앞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대선이 국제사회의 평화 협상을 망칠 수 있다며 대선을 치르지 말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반면, 러시아는 시리아 대선이 내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아사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의 대(對) 시리아 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로버트 포드 전(前) 주시리아 미국 대사는 "과거 자신의 반대 세력에 화학 물질을 사용했던 아사드가 이제는 반대 세력에 염소가스마저 사용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서방은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아사드 정권에 더 많은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CNN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