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에 부모님을 모시고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가려고 숙소를 알아보던 이경종 씨는 지난주 숙소 측에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자신이 지난해 말 예매한 필리핀 저비용항공사 에어아시아제스트 항공편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8월 9일 오전 8시 15분 인천공항에서 세부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이보다 17시간 늦은 10일 오전 1시 15분으로 항공편이 바뀌었다. 돌아올 항공편 출발시각은 16일 오전 0시 30분에서 15일 오후 6시 45분으로 당겨졌다.
이씨는 11일 "올 때가 특히 문제다. 집이 대전인데 자정 넘어 도착하면 차편이 전혀 없다"며 "항공사가 숙박이나 교통편 등 현실적 보상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년 5월까지 쓸 수 있는 120달러 크레디트포인트로 보상한다는데 그거 받아도 가족이 휴가 맞춰서 다시 여행가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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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항공사 측으로부터 전화나 문자는커녕 이메일 한통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남편과 함께 4살짜리 딸을 데리고 다음 달 23일 세부에 가려던 한지원 씨도 난감한 처지다.
한씨는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에어아시아제스트 일정이 7월 1일부터 변경됐다는 글을 보고 예약번호로 조회해보니 내가 탈 항공편도 일정이 하루씩 밀려 있었다"며 "나중에야 항공사로부터 일정 변경과 크레디트포인트 보상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콜센터로 전화를 200통은 했는데 연결이 안 돼 항공편 취소는 포기했다"며 "일정이 하루씩 밀려 숙소도 다시 예약해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필리핀 세부, 마닐라, 칼리보(보라카이)로 휴가를 떠나려던 에어아시아제스트 항공권 예약자들은 콜센터에 전화가 폭주해 연결되지 않자 다급한 마음에 필리핀 본사로 전화하거나 인천공항에 있는 한국지사 사무실까지 찾아가는 지경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소비자원은 이번 일로 피해를 보는 승객이 7∼9월에만 3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만명이 금전적 피해를 보고 불편을 겪게 된 이번 사태로 에어아시아제스트뿐만 아니라 운항일정 변경을 승인한 국토교통부도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항공사가 확실한 보상계획도 없이 1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운항일정 변경을 승인해 수만명이 피해를 보는 사태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일정 변경은 보통 3개월 정도는 앞두고 하는 게 맞다"며 "국토부에 '시간 여유를 두고 일정을 변경하고 소비자가 적절하게 보상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진철 국토부 국제항공과장은 "수요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정 변경 신청이 들어와 지난 3일 승인했는데 회사 경영상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하지는 못했다"며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에어아시아제스트 본사 측은 국내 홍보대행사를 통해 "일정이 바뀐 사실을 모르고 공항에 온 승객에게만 대체 항공편이나 150달러 상당의 숙박을 제공한다"며 "고지를 받고 일정을 변경한 승객에게는 80∼120달러의 크레디트 포인트만 보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진철 과장은 "마일리지 외에 필요시 1인당 150달러 상당의 숙박과 교통편도 제공하는 조건으로 일정변경을 승인했다"며 "에어아시아제스트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오늘 피해 처리를 원활하게 하라는 내용으로 사업개선 명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에어아시아제스트가 소비자 보상을 소홀히 하면 최대 30일의 영업정지 또는 최고 2천만원의 과징금을 물릴 계획이다.
에어아시아제스트는 말레이시아에 기반을 둔 에어아시아그룹에 인수되기 전인 지난해 8월 안전규정 위반으로 필리핀 정부로부터 5일간 운항을 정지당해 당시 세부, 보라카이 등에서 휴가를 즐기던 한국인 승객이 며칠간 발이 묶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세부발 인천행 에어아시아제스트 항공기가 기체 이상 메시지로 이륙이 27시간 늦어져 승객 162명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해 운항정지와 올해 기체결함으로 인한 승객 피해는 소비자원 집단분쟁조정위원회에 올라 있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에어아시아제스트는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항공사로 보상한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이행하는지 봐야 한다"며 "일정 변경을 몇 개월 전에 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소비자원이 지난해 외국계 저비용항공사 피해구제 접수건수를 집계한 결과 에어아시아제스트는 이용자 10만명당 34.9건으로 2위인 일본의 피치항공(9.7건)보다 3배 이상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