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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떠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법원이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게 국정원법 위반혐의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렇지만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법원의 판결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국정원장과 심리전단 직원들이 국정원법의 정치관여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서도 선거법 위반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거나 '정치 관여는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라는 억지 논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원세훈 재판' 왜 짜 맞추기라는 비판을 받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권영철의 와이뉴스 전체듣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판결이 '짜 맞추기' 라는 거냐?= 그런 비판이 나온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오기 전과 나온 뒤에 법조계 관계자 10여명과 통화를 했다. 1심 판결 어떻게 예상하느냐? 는 것과 1심 판결을 이렇게 예상했느냐? 는 질문을 했었는데 비율로 따지자면 80% 정도가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아예 무죄를 예상했다는 답변을 했다.
무죄라는 답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자체가 무죄라는 얘기가 아니고 법원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판결처럼 무죄 판결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구용회 기자와도 재판이 열리기 전 어떻게 예상하느냐를 두고 토론을 했는데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 양형은 집행유예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예상대로 판결이 내려졌다.
▶ 예상대로 됐다고 짜 맞추기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법원의 판결이 짜 맞추기라는 얘기는 예상된 판결이 나왔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고 판결문을 검토해 본 뒤 나온 평가들이다.
판결문을 본 법조인들은 법원의 판결문이 모순된다고 평가를 했는데 검사장을 지낸 한 중견 법조인은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현직 검찰간부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활동을 했다면 당연히 선거개입을 한 것인데, 정치활동은 인정하면서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을 짜 맞추기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라는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여기에 맞춰서 판결문을 작성하다보니 논리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모순이 드러난다는 얘기다.
▶ 실제 판결문에서도 모순이 드러난다는 얘기냐?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위반 혐의로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을 떠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그런 분석이 나온다.
먼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조직적인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엄하게 꾸짖는다.
재판부는 "주권자인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여론의 형성은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국가기관이 특정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이와 같은 국민들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직접 개
입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을 들더라도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판결문 결론에 이르러서는 "유죄로 인정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직원들의 이 사건 사이버 활동은 그 자체로 국가정보원법을 위반한 위법한 행위이고,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위와 같은 활동은 선거 시기에 있어서 자칫 주권자인 국민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한 행동임은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원의 이런 판단에 따른다면 당연히 국정원법상 정치중립을 위반한 행위는 선거법 위반에 다름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의 이런 엄정한 판단은 실질적인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넘어가면 지나치게 범위를 좁혀서 공직선거법을 해석한다. (구체적인 판결문을 인용해서 설명할 수도 있지만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략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정치에 관여하는 게 국정원법 위반은 되는데 선거법 위반은 안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선거운동을 지시해서 그에 따라 선거운동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면서 검찰의 책임으로 돌린다. 재판부는 판결문 여러 대목에서 검찰의 책임을 강조한다.
지난해 8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법무부 차량을 타고 출석하고 있는 모습(사진=윤창원 기자)
물론 형법상 증거에 의해서만 유죄 여부를 판단을 해야 하는 건 맞지만 법원의 판단은 국가정보원법에서는 정치관여 행위를 인정해 유죄로 판단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은 아니라는 희한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재판부도 판결문 결론에서 "이 부분 공소사실(공직선거법 위반부분)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나, 이 부분 공소사실과 상상적 경합관계에 있는 국가정보원법위반죄를 유죄로 인정한 이상 주문에서 따로 무죄의 선고를 하지 아니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국가정보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이 상상적 경합관계라면 당연히 유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법원은 이미 전교조의 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한 판례도 있다.
판결문을 읽으면서 재판부의 의도가 판결문의 행간을 읽으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이나 5공 시절에는 판결문이나 기사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 그렇다면 법원은 왜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로 인정하면서 공직선거법 위반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지난해 6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규탄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자료사진)
=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지금까지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정통성이 정면으로 훼손된다. 야당에서는 선거무효를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국정원 댓글녀' 사건에서 시작된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 '공직선거법 위반' 문제가 태풍의 핵이었다.
황교안 법무장관과 채동욱 검찰총장이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적용 여부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고 당시 채동욱 총장이 총장직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면서 버틴 결과 기소를 관철시켰다.
그렇지만 그 대가는 엄청났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뜬금없는 '혼외자 논란'으로 검찰총장직에서 사실상 쫓겨났고 특별수사팀을 이끌던 윤석렬 검사는 고검으로 좌천됐고 박형철 부팀장과 다른 검사들도 줄줄이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런 민감한 사건은 수사를 한 검사들이 공판에 관여해도 유죄를 입증하기 쉽지 않은 사건인데 수사에 관여한 검사들은 지금은 존재감조차 찾기 어려운 처지다.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박근혜 정부 들어 판사출신들이 중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찬현 감사원장, 최성준 방통위원장 등등)
검찰에 대해서는 채찍을 들었다면 법원 판사들에 대해서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판결을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수사에 관여했던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심리전단이라는 부서 하나를 여당에게 유리하고 야당에게 불리한 여론을 조성하도록 지시했다면 그보다 계획적이고 능동적인 선거운동이 어디 있겠느냐?"고 법원 논리를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 차례 이번 판결은 모순된다고 강조했다.
한 중견법조인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초기부터 일관되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했다"며 "다른 건 몰라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절대로 양보하지 못한다는
청와대의 입장이 관철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검찰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 법원의 이번 판결을 두고 검찰내부에서는 '절묘한 줄타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검찰관계자들은 "법원이 원래 정치적이다"거나 "항상 민감한 사건 때마다 법원은 줄타기 판결을 했다"는 반응을 한다. 그래서 이럴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검찰은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긴 하지만 검찰도 공소유지를 제대로 했느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특별수사팀 팀장이었던 윤석렬 검사는 '항명파동'으로 수사팀에서 배제된 지 오래고 선거법위반 여부를 판단했던 부팀장 박형철 검사는 한직인 대전고검으로 밀려났으며 지금은 공소유지를 해야 할 특별수사팀의 존재조차 사라진 상태다.
비유를 하자면 전쟁을 선포한 뒤 병사들을 지휘해야할 장수들을 좌천시키거나 배제한 뒤 전투를 대충해온 것이다. 이러고도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있을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위반도 무죄라며 즉각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검찰은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기자간담회조차 열지 않았다.
그래서 항소를 하더라도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공소유지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