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처음으로 1%대로 낮췄다.
지난해 두 차례 걸친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이후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또 다시 인하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은은 12일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본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00%에서 1.75%로 인하했다. 지난해 8월과 10월에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씩 내린 데 이어 5개월 만에 0.25%포인트 더 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은행권의 신규취급액 기준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 3.33%에 금리 인하폭 0.25%포인트를 감하면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는 3%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LTV·DTI 규제 완화에 세 차례 기준금리 인하문제는 지난해 LTV·DTI 규제 완화 이후 가계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는 가운데 두 차례 기준금리까지 인하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앞세운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LTV․DTI 규제 완화와 기준금리 인하 영향이 반영된 지난해 11월과 12월 가계 대출이 각각 6조9천억원과 6조6천억원 급증했다.
주택 비수기로 대출이 감소하는 지난 1월 역시 이례적으로 1조3900억 원 증가하는 등 높은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세는 주택담보대출 급증이 이끌었는데 지난 2월말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413조6천억 원으로 한달 사이에 4조2천억원이 늘었다.
이는 지난 2008~2014년 은행의 2월 주택담보대출 평균 증가액 (1조3천억원)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이다.
◇ "가계부채 총량 관리 필요" 지적도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다시 인하하면서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변동 폭과 향후 가계부채 관리 방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물가상승률이 한은의 물가안정목표치에 하한보다 밑돌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당연한 정책적 선택"이라며 "다만 그동안 한은이 금리 인하를 주저했던 이유로 들었던 가계부채 급증 가능성은 타당한 지적이기 때문에 정부가 가계부채 총량 규제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교수는 "정부가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대 경영학과 박창균 교수는 "대출이자는 이미 낮을 대로 낮은 상황"이라며 "금리가 0.25% 포인트 더 떨어진다고 대출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 신규 대출이나 추가 대출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창균 교수는 "기준금리 추가 인하가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계부채가 이미 많이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더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이미 시장에는 금리인하 기대감이 반영된 저금리 대출상품이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의 기대대로 금리가 인하됐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낮은 금리의 대출상품이 나오기는 어렵다"며 "기준금리가 인하됐다고 해서 가계대출이 급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다만 "전체 가계대출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기준금리가 아니라 금융기관의 태도"라며 "지금까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양보다 질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양이 늘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계부채 관리 초점을 바꿀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단기․변동금리 중심의 기존 대출을 장기․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가계부채 질 개선’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상환능력이 없는 차주에게 대출을 제한해 부실한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정책 중심을 옮겨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 (윤창원 기자)
◇ 금융당국 "총량 규제는 안 해"…관계기관 "가계부채 관리협의체" 구성금융당국은 당분간은 인위적인 가계부채 총량 규제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고위관계자는 "가계부채를 관리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총량 규제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 역시 가계부채 총량 규제 불가 원칙을 분명히 했다.
임 내정자는 앞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가계부채 문제 해결의 우선순위를 묻는 질의에 "가계부채는 '부채'와 '소득' 양 측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부채 측면에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시스템 위험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가계부채 동향과 자금흐름 등을 모니터링하며 부채가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총량규제 등 인위적인 규제는 하지 않으면서도 대출 심사 강화를 통해서 부채 상환능력이 없는 차주에게는 대출을 억제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