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을 규명할 특별수사팀을 12일 구성하면서 정국을 뒤흔들 대형 게이트 사건의 수사가 본격화됐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와 언론 인터뷰 내용 등에 비춰 이번 수사는 현 여권 핵심인사들을 조준선에 올리고 새누리당의 대선자금 비리 의혹까지 겨눠야 하는 등 폭발력을 지닌 채 전개될 공산이 크다.
수사의 실마리는 성 전 회장의 유류품에서 나온 메모('성완종 리스트')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 나눈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메모에는 성 전 회장이 금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현 여권 실세 등 8명의 이름이 기재돼 있고, 이 중 6명에 대해서는 돈의 액수도 함께 적혀 있다.
'김기춘(10만 달러), 허태열(7억),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홍문종(2억), 유정복(3억), 이병기, 이완구'라는 글이 쓰여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의 경우, 이름·금액과 함께 '2006년 9월26일'이라는 날짜도 적혀 있다.
성 전 회장의 전화 인터뷰 내용도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메모 속 인물에게 언제, 어떤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전화 인터뷰 녹취 파일에 담겼고 그 내용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특히 성 전 회장은 이 인터뷰에서 "홍문종 의원에게 준 2억 원은 2012년 대선자금"이라고 주장해 18대 대선을 앞두고 여당 내에서 불법 대선자금 모금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홍 의원 관련 의혹은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가 3년 이상 남아 있다.
특별수사팀은 경향신문의 전화인터뷰 녹취 파일을 확보하는 한편 경남기업 측으로부터 메모나 인터뷰 내용을 뒷받침할 '비밀장부' 등 자료를 모으는 데 당분간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메모와 인터뷰 속 금품거래 의혹에 어떤 법리를 적용할 수 있고, 공소시효가 남았는지 등을 검토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수사는 구체적인 범죄 단서가 확보되는 사안부터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를 우선 진전시킬 수 있는 의혹들은 성 전 회장과 메모 속 인물 외에 제3자가 등장하는 사안이 될 공산이 크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돈을 건넸을 때는 우리 직원들이 심부름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처럼 제3의 인물이 있고 그를 통해 의혹을 뒷받침할 진술이 나오면 수사가 빨라질 수 있다.
단서가 불어나면 이를 근거로 메모나 인터뷰 속 인물들에 대한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의 강제수사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혐의를 입증할 '장부' 등 증거가 확보되면 피의자 소환 등 후속 수사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경남기업으로부터 비리 단서를 더 얻을 수 있다면 수사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인이었던 성 전 회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험'에 들었다는 설(說)이 나오는 만큼 수사가 여야 정치권과 고위 공무원 등을 겨냥하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반적인 비리 의혹 사건보다 단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핵심 인물인 성 전 회장이 고인이 됐고, 당사자들끼리만 은밀하게 알고 있는 금품로비 사건의 속성상 경남기업에서 검찰에 수사 단서가 될 만한 관련 자료를 얼마나 제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더구나 메모 속 인물들이 강력하게 금품거래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공소시효를 이미 완성한 사안의 경우, 의혹을 뒷받침할 단서가 넉넉해도 수사할 수 없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다.
메모나 인터뷰 내용은 충격적이지만 적법한 방식으로 입증된 비리의 실체는 이것보다 턱없이 적어 '용두사미'로 귀결될 우려가 벌써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의혹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것은 수사에 미온적일 경우 정치적 편향 논란이나 특검 도입론 고조 등 검찰 조직에 부정적인 여론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