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여야 합의까지 이끌어낸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4월 국회 처리가 국민연금 때문에 6일 무산됐다. '소득대체율 50% 상향'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한 재정절감분의 '20% 투입'. 국민연금과 연계한 이 두 가지 숫자가 결국 다 된 밥에 제대로 코를 빠뜨린 격이 됐다.
◇'숫자의 마술'에 헌신짝 신세 된 '여야 합의'
정치권의 '설익은' 국민연금 연계 방안이 '숫자의 마술'을 앞세운 정부 논리에 휘둘려 화를 자초했다는 시각에도 힘이 실린다. 여야가 오는 11일쯤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다시 처리에 나설 예정이지만, 여전히 진통을 피하기 힘든 까닭이기도 하다.
실제로 여야 합의를 다시 백지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톡톡히 한몫한 건 보건복지부의 '보험료 2배 인상' 논리였다. 청와대가 국민연금 연계에 대해 "월권"이라며 불쾌함을 나타낸 동시에 등장한 정부 입장이기도 했다.
'노후보장 강화'와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명분으로 국민연금을 연계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극적 타결을 이룬 건 지난 2일. 복지부 문형표 장관은 곧바로 국회를 찾아가 "보험료를 두 배 올릴 자신이 없으면 소득대체율을 올려선 안 된다"고 반대했다.
이후 복지부는 이른바 '보험료 폭탄' 논리로 연일 '융단 폭격'을 가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할 경우 수지 적자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6.69%로 올려야 한다"거나 "안정적 수준으로 운영하려면 18.85%까지 인상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하지만 16.69% 인상론은 2083년, 18.85% 인상론은 2100년까지 국민연금 적립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나온 수치다. 소득대체율을 현행 체제로 가더라도 2083년엔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인 14.11%로 올려야 한다.
◇'보험료 폭탄' 논리에 다른 명분 '증발'복지부는 6일에도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인 상태에서 2060년에 기금이 소진된다면, 2060년에는 당장 소득의 1/4 수준인 25.3%, 2083년에는 28.4%를 자녀세대가 보험료로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더라도 2060년 보험료율은 21.4%로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복지부의 이런 논리는 '미래에 죄짓는 느낌'을 주기엔 충분했고, 결국 여야 합의를 주저앉힌 채 청와대의 '월권론'에 힘을 싣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이를 통해 '노후 보장'이나 '사각지대 해소' 등 다른 명분들은 사실상 증발하게 됐고, 국민정서법상 휘발성이 강한 '보험료 폭등' 이슈가 향후 논쟁을 주도하는 형국이 됐음은 물론이다.
전문가들 역시 "복지부의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도 "노후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올리겠다는 야권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야권 '경착륙론'도 빌미…실질적 방안 모색 필요야권은 복지부 자료를 근거로 "어차피 2060년 고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현재도 46.5%인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하더라도 보험료율은 지금보다 1%p 많은 10.01% 수준"이란 입장이다.
따라서 복지부의 '보험료 폭탄' 주장과 달리, 사업장 가입자 개개인의 추가 부담은 0.5%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소득대체율 50% 상향'을 명시하지 않으면 다른 법안 처리도 보이콧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수치상으로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소득대체율 상향은 야권이 명분으로 내세운 '노후보장'이나 '연금 사각지대 해소'와는 또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의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린다 해도 가입기간이 긴 중상위층의 연금액은 일부 오르지만, 불안전 노동자 등의 노후보장 효과는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소득이 낮고 가입기간이 짧은 비정규 노동자의 연금액에 미치는 효과는 사실상 미미한 데다, '사각지대 해소'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NEWS:right}
특히 '2060년 고갈'을 전제로 한 야권의 주장은 이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경착륙론'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2083년이나 2100년까지 염두에 둔 복지부의 '연착륙론'에 반격의 빌미를 줬다는 얘기다.
오 위원장은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미래세대의 연금 부담은 어차피 커질 수밖에 없다"며 "보험료율의 점진적 인상과 기초연금 강화 등을 통해 세대별로 재정을 분담하는 이행 경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