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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자가격리자 '24시'…준비없이 바깥과 단절 '당혹'

보건/의료

    메르스 자가격리자 '24시'…준비없이 바깥과 단절 '당혹'

    • 2015-06-09 07:41

    격리자 증상 체크도 형식적…식재료 마련 등 생활 고통

     

    "건국대병원 응급실에서 전화받고 연락드립니다."

    건국대병원 응급실에 머물렀던 70대 여성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설마 했던 마음은 역시나로 드러났다.

    일요일인 7일 오후 8시30분께 다사다난했던 주말을 보내고 한 숨을 돌리려던 순간 집 근처 보건소와 건국대병원에서 잇따라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낮 아내와 함께 들렀던 건국대병원 응급실에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있었으니 잠복 기간이 끝나는 이달 19일까지 자가(自家) 격리 조치한다는 것이었다.

    병원 측은 "문제의 환자와 거리가 꽤 됐고, 의료진도 겹치지 않지만 한 공간에 있었던 만큼 격리를 해서 증상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장 현관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일터에도 나갈 수 없다는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으나 보건당국은 개개인의 형편을 살필 처지가 아닌 모양이었다.

    보건소 측은 "휴가라고 생각하고 2주간 맘 편히 쉬시라"고만 했다.

    임신 초기인 아내가 만약 발병할 경우 쓸 수 있는 약이 없다는 걱정을 하자 "손발을 잘 씻으라"는 답이, 전날처럼 저혈압으로 실신하는 등 위급 상황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감염 가능성이 사실상 없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만으로 보름간 격리를 결정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보건당국의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고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격리상태에서 맞는 첫 아침인 8일 당면한 문제는 식사였다.

    집안의 음식재료는 며칠 분에 불과했고, 바깥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인척도 없었다.

    인근 식당에 음식을 주문하는 방안도 불가능했다. 감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메르스 접촉자로 분류된 상황에서 침 등이 묻은 그릇을 현관 앞에 내놓을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식재료를 배달받기로 했지만, 이른 더위에 쉰내를 내며 쌓여가는 음식 쓰레기 처리에는 여전히 답이 없었다.

    그러나 메르스 접촉자에 대한 주변의 시선에 비해 이런 사항들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아파트 단지 내의 다른 동에 방역복을 입은 남성이 나타났다는 소문만으로도 지역 주민 커뮤니티는 온종일 들끓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학교 인근에 사는 가족이 자가격리 조치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 경우 어느 정도의 파장이 일지 가늠하기 힘들고, 사태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보이지 않는 따돌림을 당할 것이란 걱정까지 됐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보건당국은 여전히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이달 19일까지 격리된다고 밝혔던 보건소 측은 8일 오후 격리기간이 21일까지라고 말을 바꿨고, 재확인을 요청하자 격리기간이 20일까지라고 재차 정정했다.

    아침·저녁 두 차례씩 전화로 이뤄진 자가격리자 증상 체크도 '체온이 몇 도냐'는 등의 구체적인 질문은 없었다. 그냥 "메르스 증상 아시죠? 증상 있으신가요"라며 건성으로 이뤄지는 것 같았다.

    자가격리 통지서에는 격리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엄포가 담겨 있었지만, 사실상 보건당국은 자가격리자에 대한 관리·통제력을 잃은 듯 느껴졌다.

    보건당국은 심지어 격리 대상자의 신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부부 각자에게 자가격리 통지서를 따로 전달하느라 이날 오후 두 차례나 현관을 두드렸다.

    자가격리 기간은 아직 한참 남았다. 그 이후에도 메르스 확산이 멈추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이 든다.

    (※ 이 기사는 메르스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A(36·서울 송파구)씨가 하루 동안 겪은 자가격리 생활을 1인칭 화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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