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군의 탄저균 불법 반입 및 실험에 대한 국민고발단 모집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미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욱 강렬하게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는 광고 문구가 마치 우리 정부의 태도 같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주한미군 탄저균 반입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토론회'에서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이미현 팀장은 "우리 정부가 미국의 조사결과와 처분만을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로 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주한미군이 생화학무기금지법과 감염예방법 등 국내법을 명백하게 위반했는데도 정부가 자체 판단과 조사조차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등이 사건 직후 오산기지를 방문해 미군이 제공한 설명 정도만 듣고 돌아왔을 뿐, 이달 말 구성될 예정인 합동조사단의 공식적인 조사와 결과 발표는 미정인 상황.
시민 8704명으로 이뤄진 국민고발단은 지난 22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 등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가 미군속의 독극물 방류사건과 관한 2001년 11월 결정에서 '환경 관련 사항은 전혀 규율하고 있지 않고 있는 SOFA 규정이 독극물 방류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고, 영화 '괴물'의 모티브가 된 용산 미8군 측의 한강 유독물질 방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된 것 등이 근거가 됐다.
'사전에 몰랐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에 대한 반론도 이날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주한미군은 지난 2013년부터 서울 용산과 경기도 오산, 평택, 군산 미군기지 내 연구실에서 생물학전 대응 실험을 하는 일명 '주피터(JUPITR·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위협인식)'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지난달 27일 문제가 됐던 오산 공군기지 내 탄저균 반입 실험도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주피터 프로그램 안에 있는 '생물감시정보공유체계(BSP)'가 한미 양국이 세계 최초로 맺은 국가 간 생물무기 대응 공조체계인 '생물무기감시포털(BSP)'과 사실상 동일한 것 아니냐는 게 시민사회단체들의 주장이다.
'생물무기감시포털'은 위협적인 생물학 작용제가 사용되는 것을 사전에 감시·탐지·대비·대응하기 위한 한미공조체계인데, 여기에 탄저균도 포함돼있다.
이미현 팀장은 "정부가 주피터 프로그램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상 주피터 프로그램의 일부를 한미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보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지난 2011년부터 양국이 연합 생물방어연습을 진행하는 등 한반도의 생물무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지속적 훈련을 해왔다는 점도 하나의 근거다.
주한미군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프로토콜에 따라 폐기했다고 밝힌 탄저균 처리 과정에 검증 절차가 없는 점도 논란이다.
최근 미국 언론 보도 등을 보면, 미국 CDC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5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서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탄저균 비활성화를 위해 감마선을 사용해 왔는데, 포자의 양이나 밀도에 따른 조사량의 변화 없이 감마선을 일괄 적용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군 자체 처분과 조사만 믿는 것은 정부가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국내법 절차만으로도 주한미군의 탄저균 반입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가능해 보이지만,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독일처럼 개정해 이에 대한 조항을 명시할 필요성도 강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하주희 미군문제연구위원장은 "독일 SOFA를 참고해 우리 SOFA에도 국내법적으로 반입이 금지돼 허가가 필요한 물질에 대해서는 그 목적에 대해서부터 사전에 통보, 협의, 허가를 얻도록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