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88)이 22일 서거했다.
1927년 경남 거제 출생으로 장택상 국회부의장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만 25세에 역대 최연소 당선, 이후 9선을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3선 개헌에 항의해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야권을 지도자로서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었다.
19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을 주도하다 초산테러를 당했고, 1970년 '40대 기수론'을 제창하면서 7대 대선에서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후 1972년 유신 선포에 미국에서 급거 귀국했다 가택연금을 당하는 등 반유신투쟁을 전개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대정부질의를 통해 박정희 정부를 규탄하기도 했고, 이듬해 만 45세 최연소로 야당인 신민당 총재가 됐다.
신민당 총재로 재선출된 1979년 'YH무역 여공 신민당사 농성' 사건 때 경찰에 강제 연행돼 총재직이 정지된 뒤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됐다.
김 전 대통령은 사건 이후 미국 타임과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를 강력히 주장했었다.
1980년부터는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3년간 불법 가택연금 됐으며, 1983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기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23일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6월 민주 항쟁 이후 통일민주당 총재로 민주화추진협의회을 구성해 민주진영을 구축했다.
그러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면서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선언,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추대돼 재야인사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2년 당 총재로 대선에 출마해 14대 대통령에 당선돼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32년 간의 군사 정권 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문민정부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