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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유혹 "인생 하이패스 타려면 '코인' 무조건 사라"

금융/증시

    탐욕의 유혹 "인생 하이패스 타려면 '코인' 무조건 사라"

    ['서민경제의 좀비' 유사수신 실태진단 ①]

    저금리의 일상화, 부동산 경기 침체, 증시 급락… 암울한 경제상황 아래 재산증식 방법을 찾지 못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사수신업체들의 사기행각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사수신은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을 양산하게 하고 유지되는 동안에는 피해자들이 오히려 유사수신업체를 옹호토록 만든다는 점에서 공포영화의 '좀비'같이 사회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6~8일까지 유사수신업의 실태와 근본대책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탐욕의 유혹 "인생 하이패스 타려면 '코인' 무조건 사라"
    계속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일반인들에게 유사수신(類似受信)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금융감독원의 규정을 빌자면 ①원금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②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③자금모집을 하는 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같이 원금보장과 고수익을 약속하는 것이 특징인데 대다수 투자자들은 고수익은 커녕 원금마저 날리는 경우가 허다해 민생파탄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유사수신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사수신업체와 만남을 시도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

     

    ◇ "우리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 유통을 관리하는 스타트업 기업"

    수소문 끝에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가상화폐를 유통시킨다는 A사 영업자인 ㄱ씨와 상담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A사 관계자들과 만남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최근 금융당국의 암행단속이 강화되자 새로운 고객이 나타나도 소개자 등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의심쩍으면 연락을 끊기도 했다.

    ㄱ씨는 "은행에 맡겨놨던 여윳돈을 불릴 만한 투자처를 찾고 있다"는 취재기자의 말에 대뜸 "은행에 돈을 예금하는 것은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는 짓"이라며 "자신도 A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시행착오를 많이 했다"며 공감대를 형성해 갔다.

    A사에 대해서는 "가상화폐를 유통 관리하는 스타트업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A사가 발행한다는 이른바 '코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비트코인의 예를 들어 가상화폐의 정의를 설명하던 ㄱ씨는 A사의 코인이 태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조만간 실제 화폐같이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보유하기만 하면 엄청나게 가치가 폭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ㄱ씨는 얼핏 들으면 꿈같은 소리에 반신반의 하는 표정을 짓는 취재기자를 데리고 A사 본사로 향했다.

    역삼역 대로변의 큰 주상복합건물의 두개층을 모두 임대한 A사 사무실은 일견 중견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입구에는 대형 컴퓨터 모니터에 코인 사진을 띄워놓고 IT 벤처 기업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안에 들어서자 컴퓨터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딜링룸'과 상담실이 보였고, 휴게실에는 투자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열심히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 "A사 코인 사업에 태국 고위급 정치인과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여, 보유가 대박"

    ㄱ씨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서자 A사의 교육담당 임원이라고 밝힌 남성이 나타났다.

    단정하고 깔끔한 수트 차림의 이 임원은 A사가 발행하는 코인의 원리와 수익구조를 능수능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A사 코인의 작동원리는 비트코인과 대부분 유사했지만, 임원은 실제 시장에서 화폐로 사용하는 사용자가 없고 환전기능이 없다는 비트코인의 단점을 A사가 극복했다고 주장했다.

    재미있게도 A사 코인이 실제로 화폐처럼 효용성을 발휘할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태국이었다.

    태국의 유력 통신사, 유통업체 등과 코인으로 전자결제를 할 경우 A사가 일정금액 할인해줄 수 있는 제휴를 맺었고 1월 중으로 시행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제휴를 맺은 유통업체와 통신사가 태국 최대규모여서 A사 코인은 사실상 화폐와 동일한 기능을 가지게 되며 할인 혜택까지 있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국이 왜 A사에게 그런 혜택을 주려 할까? 답은 명쾌했다.

    A사 설립자가 태국 정치권, 경제계 거물들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들 인사들이 A사의 사업계획에 매료돼 직접 지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설명과 함께 태국의 여야 지도자와 대법원장 등 고위층이 회사 관계자들과 찍었다는 사진들이 제시됐다.

    A사가 태국에서 합법적인 사업을 위해 설립했다는 태국 법인 허가증을 내보이는 순간 옆에 있던 ㄱ씨는 "태국에서는 국책사업이라고 보면 된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물론 태국어를 알지 못하는 기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교육 임원은 이런 정보가 태국 내에서도 매우 제한적으로 공유되고 있으며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극소수라고 강조했다.

    태국에서 코인이 유통되는 1월이 되면 보유한 코인의 가치가 수직상승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근거였다.

    ◇ "비포장 도로 달리다 하이패스로 가냐 국도로 가냐 선택의 기로"

    교육 임원은 코인을 보유만 해도 투자금액의 서너배 되는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한 구좌당 120만원씩 하는 코인의 구매를 거듭 권유했다.

    "코인 확보하십시오. 쓸 사람 많으니 코인 가격 무조건 상승합니다. 한 나라에 진출할 때마다 3, 4배씩 뛰는데 이제 태국하고 캄보디아가 다음달에 오픈합니다"

    코인을 사려는 사람을 소개시켜주면 따로 수당을 준다며 다단계 판매를 권하기도 했다.

    소개해준 사람이 산 코인 액수의 10%를 수당으로 지급하며 소개해준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면 그 사람이 산 금액에 대해서도 일정금액을 수당으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코인을) 구매하세요. 그리고 소개해주면 고생했으니까 계속 (수당을)주는 거… 고정 광고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떻게 들으면 황당한 소리였지만 의심이 고개를 들 때쯤이면 기막히게 제시되는 근거와 논리들이 딱히 반박할 거리를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설 때쯤 처음 만난 ㄱ씨가 웃으며 한 마디를 남겼다.

    "부담되시면 120만원만 해 보시면 되요. 억대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두어달 내의 일이에요. 지금 투자하시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 원금, 고수익 보장이 유사수신의 주무기

    최근 한국의 사회와 경제상황은 유사수신업체들이 기승을 부릴만한 토양을 마련해주고 있다.

    저금리기조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예전에 비해 일반인들이 돈을 불릴 수 있을 만한 수단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반면 잦은 구조조정과 평균수명 증가로 어떻게든 재산을 증식시켜야만 되는 수요자들은 오히려 더 늘어나는 추세다.

    유사수신업체들은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간극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한때 벤처벨리로 불렸던 강남역과 역삼역 부근 사무실이 이제 A사와 같은 유사수신업체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감독원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금융감독원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전국적으로 약 2300여개의 유사수신업체가 난립한 것으로 조사됐다.

    초기와 달리 투자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위장술도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대부분 유사수신업체들은 해외펀드, 가상화폐, 핀테크 사업 투자나 외환거래 등을 내세우며 피해자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피해간다.

    대부분의 유사수신업체들은 초기에는 약속한 고정적 수익 혹은 고수익을 지키기 위해 다단계 판매 방식에 의존하게 되는 것도 특징이다.

    투자자들이 소개한 새로운 투자자들의 돈을 수익으로 배분하는 '밑돌 빼서 윗돌 괴기'식 방식으로 일정기간을 지탱하는 것이다.

    이런 유사수신업 특성 때문에 다단계가 한계에 이르게 되면 회사관계자들이 돈을 가지고 잠적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유사수신업체와 한번 관계를 맺게 되면 이런 '밑돌 빼서 윗돌 괴기'식 수익 배분이 가능해지도록 피해자들이 스스로 새로운 피해자들을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 피해를 더욱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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