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공식 선언한 직접적인 배경은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 등 양대 지침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 때문이다.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과 '노동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결국 접점을 찾지 못했다.
◇ '쉬운 해고' vs "부당해고 막을 안전장치"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쉬운 해고'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근로기준법 23조를 둘러싼 논쟁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의 해고를 엄격하게 제한해 사측에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방법은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두 가지로 제한됐다.
징계해고는 노동자가 횡령 등 개인적인 비리나 심각한 법규 위반을 저질렀을 경우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정리해고는 기업의 경영사정이 극도로 악화했을 때 노동자의 대규모 해고를 가능하게 했다.
'쉬운 해고'는 여기에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해고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말한다.
인력의 고령화와 인건비 부담 등을 이유로 재계에서는 이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정부가 내놓은 초안에서는 ‘쉬운 해고’가 가능한 대상을 '공정한 평가와 이를 토대로 한 재교육, 배치전환 등 기회를 줬음에도 업무능력 또는 성과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업무의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노동자'로 규정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합리적 기준과 명확한 절차를 갖춘 가이드라인은 해고와 관련된 노사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며 "부당해고 사례를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하고 정년 60세가 지켜질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는 만큼, 노동계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양대 지침은 쉬운 해고와 저임금, 그리고 비정규직 확대를 용인하는 것이라며 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반발해 왔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요건 완화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이도 확연하다.
◇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사회통념상 합리성 자체가 모호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등 정부의 양대 지침 추진에 반발해 9·15 노사정 대타협 파기와 함께 노사정위원회에도 불참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 윤성호 기자)
취업규칙은 채용, 인사, 해고 등과 관련된 사규를 말한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는 임금피크제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노동자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는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지만 정부 초안에서는 판례 등에 근거해 노동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취업규칙 변경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변경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 기준으로는 노동자의 불이익 정도,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적당성,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노동조합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 동종 사항에 관한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6가지를 제시했다.
노동계는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것 자체가 개념이 모호하고 사측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며 취업규칙 변경요건을 완화할 경우, 임금피크제 등 사측이 원하는 취업규칙을 마음대로 도입할 수 있다며 강력하게 반대해 왔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사업자가 형식적인 '협의'라는 명목으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등이 이뤄질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노동계가 정부의 정책방안을 추인해 준 것으로, 노동시장에서는 해고가 더 쉽게 이뤄지고 사용자의 권한이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이 변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