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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의 목소리] "전 비겁했던 엄마였습니다"

사건/사고

    [416의 목소리] "전 비겁했던 엄마였습니다"

    故이영만 학생의 생전 모습/페이스북 캡처

     

    '416 기억저장소'가 기획한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다섯번째 손님은 故이영만 학생의 어머니 이미경 씨입니다.


    "세월호 사고로 영만이를 보내고도 제일 마음이 아프고 죄책감이 드는 게, 처음에 우리 영만이가 태어났을 때도 저는 비겁했던 엄마였습니다."

    1998년 2월 19일.

    영만이는 기도와 식도가 붙은 상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태어난 지 닷새 만에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인큐베이터 안에 있는 영만이는 온 몸에 주렁주렁 호스를 달고 있었습니다.

    "저희 친정 엄마가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면서 저보고 갓 태어난 영만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아마 영만이가 건강하게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근데 엄마인 전 그말을 듣고 영만이를 보러가지 않았어요. 수술을 하고 거의 1주일 만에 아이를 보러 갔나봐요"

    2014년 4월 23일.

    세월호 사고 발생 1주일 만에 영만이가 이번에는 시신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세상에 올때 처럼 떠날 때도 1주일 만에 엄마 곁으로 온 것입니다.

    "엄마로서 늘 마음에, 여러가지로 편안하게 해주지 못했던 것이 기억나고 특히 아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도 고통스러웠을텐데 갈 때도 고통스럽게 갔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힘들었죠"

    그래서였을까요. 세월호 사고 초기엔 이미경 씨는 남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사고 원인 등이 상식적으로, 정상적으로 밝혀질 것이란 믿음에 남들 앞에 나가서 뭘 요구한다는 것 역시 죄스럽고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습니다.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이라는 사람은 세월호 사고 인명피해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수와 비교하는 발언을 했고, 국회 농성을 갔더니 어느날부터 유가족의 출입을 막아서서 다 큰 어른들이 몰래 국회 담벼락을 넘는 일도 생겨났습니다.

    "아이를 잃는 순간에 우리는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어요."

    배보상을 바라보는 주변의 이상한 시각도 유가족을 두번 울리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나오는 배보상 얘기는 사실은 듣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사실은 아이를 잃으면서 삶의 의미가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아이를 보내고나니 돈이라는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가장 값진 것을 잃어버린 대가로 돈을 준다고 하는 것은, 그걸 받아들이라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얘기인거죠"

    "누구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자기한테 세월호 같은 일이 벌어질 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늘상 돌아가는 생활속 곳곳에 많은 위험들이 있지만 우리가 그런 위험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를 하기 쉽지 않죠. 그런데 제가 아이를 잃고 나니까 그런 것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416의 목소리' 전체 방송은 팟캐스트 포털서비스 ‘팟빵’, 416의 목소리 페이스북 페이지, 노컷뉴스 홈페이지 등에서 청취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가족의 소리를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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