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
한진해운이 25일 신청한 자율협약서에 대해 자구방안이 부실하다며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완을 요구했다. 채권단이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사재 출연 등 대주주의 손실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진해운은 자율협약서에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와 함께 런던 사옥 매각 등의 자구계획을 밝혔지만 채권단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채권단은 오는 6월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 1900억원에 대한 대책과 4개월간의 운영자금 확보 방안, 용선료 인하협상 계획과 관련된 보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의 경우 당장 매각할 수 있는 자산이 없어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자금난에 쫓기면서 지난 2014년 벌크선 전용선 사업부를 매각하는 등 현금화시킬 수 있는 자산은 대부분 처분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진해운측에 운영자금을 확보하도록 요구한 것은 사실상 대주주의 손실 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현대상선의 경우 자율협약 과정에서 현정은 회장이 사재 3백억 원을 출연했다.
향후 구조조정을 원활히 추진하려면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도 대주주의 손실분담은 중요한 문제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을 앞두고 최은영 회장 일가가 보유주식을 매각해 사전정보를 이용했다는 도덕적 비난이 일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팀장은 "부실경영 책임이 있는 대주주나 경영인들이 부실책임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고통분담의 자세와 그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계획을 밝히고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용선료 인하도 채권단이 요구하는 자율협약 수용의 핵심 전제 조건 중 하나다.
해외 선주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자율협약은 무산되고,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 용선료 인하 없이는 채권단이 자금을 지원해 봐야 해외선주들의 호주머니로 흘러갈 뿐이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이 부담해야 할 용선료는 모두 5조5천억원에 이르고 올해만 9천288억을 갚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선료 부담이 이처럼 커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경영난에 몰린 해운회사들이 보유 선박을 팔고, 대신 해외선주사로부터 배를 빌리는 용선방식으로 경영체제을 바꾸면서 발생했다.
계약을 맺을 당시는 호황기여서 높은 용선료를 지불하기로 했지만 지금은 가격이 5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 세계 경제의 장기불황으로 물동량은 급감하고, 운임료도 크게 떨어졌지만 비싼 용선료는 그대로다보니 해운사들의 경영은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해운업의 불황 속에서도 한진해운은 지난 2년간 순익을 냈지만 지금의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은 5조6천억 원에 이르는 부채와 함께 비싼 용선료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또한 한진해운은 비협약 채권 비율이 높은 만큼 이에 대한 채무조정 방안도 채권단의 요구사항 중 하나다.
지난해 말 현재 한진해운의 차입금은 5조6천억원이고, 이중 회사채 1조5천억원과 선박금융 3조2천억원을 합친 4조9천억원이 비 협약채권이다. 금융권 차입은 나머지 7천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비협약 채권에 대해 한진해운이 채권자들과 협상을 벌여 만기 연장 문제 등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다.
해운 얼라이언스(동맹) 가입도 전제 조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동맹은 해운사들이 전세계의 컨테이너 물류를 서로 나눠서 정기적으로 운송할 수 있도록 각국 선사들끼리 맺는 계약이다. 여기서 빠지게 되며 해운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한진해운의 보완 작업을 통해 채권단이 자율협약을 수용하면 한진해운 채권은 원리금 상환이 3개월간 유예된 상태에서 채권단은 실사를 통해 출자전환을 포함한 채무조정 방안을 수립하게 된다.
이후 한진해운의 운명은 먼저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과 함께 모두 살아나거나, 아니면 합병을 통해 하나의 회사로 통합될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자율협약이 실패하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