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에서 조업 중인 원양어선에서 베트남인 선원이 한국인 선장 등 2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부산해양경비안전서 제공)
지난 1996년 8월 2일 남태평양 사모아 섬 부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우리 원양어선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악의 선상 반란으로 기록되고 있는 '페스카마호'사건이다.
열악한 작업조건과 폭력 등에 반발한 중국동포 선원 6명이 한국인 선원 7명을 포함해 11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수장시킨 사건이다.
당시 피의자 6명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주범을 제외한 5명은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20년이 지난 어제 인도양에서 우리나라 국적의 참치 잡이 원양어선 '광현 803호'에서 선상 살인이 일어나 우리나라 선장과 기관장이 살해됐다.
이 배에는 숨진 선장과 기관장을 비롯해 항해사까지 한국인 선원은 3명만 있을 뿐, 총 18명의 선원 중 나머지는 외국인 선원들이다.
인도네시아 선원이 8명, 베트남 선원이 7명으로 현재까지 술에 취한 베트남 선원 2명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국이 현장에 수사팀을 급파한 만큼 수사팀이 현장에 도착해 경위를 조사하면 정확한 동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아직 '페스카마호' 사건 때 처럼 선원들이 조직적으로 범행을 공모해 저지른 선상 반란인지 아니면 피의자들의 단순한 선상 살인인지 미리 예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 역시 외국인 선원들에 의해 범행이 이루어졌고, 망망대해 고립된 배 안에서 발생한 만큼 유사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 외국인 선원 비중 급증…갈등 상존
'광현 803호'의 선사인 광동해운. (사진=송호재 기자)
원양 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원양어선 업체는 80여 곳으로 줄어 한 때 8백여 척이었던 배가 지금은 3백여 척이 채 안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원양어선의 규모는 300톤 급 안팎이 대부분으로 보통 20명가량이 승선해 조업에 나선다.
승선인원 20명 가운데 한국인은 '광현 803호'처럼 선장과 기관장, 항해사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외국인 선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인 선원들 가운데도 최근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비중이 늘고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정기 원양상선의 경우엔 필리핀 선원의 비중이 높지만, 상선에 비해 작업조건이 열악하고 월급도 낮은 원양어선의 경우 필리핀 선원들도 기피하면서 자존심이 강하기로 알려진 베트남인들의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문화적 차이와 소통의 어려움 등에 따른 갈등이 제일 큰 문제다. 선장 등에게 늘 강조하고 교육을 하지만, 당장 눈앞에 물고기 떼가 보이는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한 마리라도 더 물고기를 잡아야하는 상황에서 앞뒤 안 가리다 보면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강압적 지시가 나올 가능성이 있고, 망망대해 고립된 상황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 쌓이게 되면 선상 살인, 선상 반란 같은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처우개선을 통한 한국인 선원 비중을 다시 늘리고, 외국인 선원들의 경우 최소한의 소양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오래 전 국민 대다수가 못 먹고 못살던 시절에는 '마도로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업계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처우개선을 통해 한국인 선원을 늘린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
외국인 선원 채용은 선원송출회사가 공항에서 외국인을 인도 받아 곧바로 배에 태우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 승선하기 전 연수나 교육은 아예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 선원을 채용할 경우 최소한 배를 타기 전 연수 등 교육과정을 마련해 당사자의 성향이나 업무적응력 등을 파악하는 게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선장을 비롯한 우리 선원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폭언이나 폭력은 물론 강압적 지시 대신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업무 지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선상 반란이나 선상 살인사건을 근절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