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장소가 법정이 아닌 국립소록도병원으로 돼 있다. (사진=고영호 기자)
한센인 등이 국립소록도병원 임시 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고영호 기자)
모두가 슬픈 재판이었다.
재판부와 원고·피고 대리인 모두 한많은 죽음 앞에 묵념했다.
고흥 소록도 한센인의 낙태와 단종수술(정관절제수술)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고법 제30 민사부(재판장 강영수 부장판사, 법관 장철익·최봉희)가 합사된 소록도 만령당 뒷편 한센인의 무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묵념에는 재판장과 한센인을 대리한 원고 측 변호인들 및 피고인 대한민국을 대리한 변호인이 함께해 숙연함을 더 하면서 한국 근대사의 슬픈 단면을 반영했다.
소록도 한센인이 옛 검시실 앞에서 재판부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고영호 기자)
담장이 없는 소록도에서 유일하게 담장이 있는 옛 감금실 (사진=고영호 기자)
소록도 자료실을 찾은 재판부 (사진=고영호 기자)
재판부는 소록도 현지에서 재판을 진행하면서 검시실과 감금실 수탄장 등 한세인들의 한이 어린 현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강영수 재판장이 소록도 현장 방문지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고영호 기자)
강 부장판사는 20일 오전 9시 40분 심리 시작에 이어 현장 방문 직후인 오후 3시 35분에 심리를 재개하면서 "만령당에서 묵념하는데 비가 내렸다"며 뜻깊은 한 마디를 했다.
소록도는 한센인들의 삶을 슬퍼하는 듯 아침 일찍부터 재판이 끝난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앞서 원고 측 변호인들은 재판부와 함께 소록도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옛 자혜병원을 찾아 "피고 대리인도 내심 원고가 이기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며 한센인의 인권과 피해가 모든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공감을 일으키는 사안임을 상기시켰다.
다만 피고 측 변호인은 "감정적으로는 한센인들의 사연을 이해하지만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손해배상을 질 경우 국가를 대신해 헌신하고 봉사했던 이들이 낙태와 단종수술 같은 불법 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된다"며 행위 주체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센인 측 변호인들이 소록도 임시 법정에 앉아 있다. (사진=고영호 기자)
국립 소록도병원 임시 법정에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고영호 기자)
재판 쟁점은 한센인에 대한 낙태와 단종수술을 강제로 했는지 여부였다.
소록도에서 낙태한 한센인으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 할머니는 "경찰서 격인 지도부의 연락이 와서 낙태를 하러 가게 됐다"며 낙태가 사실상 강제였음을 증언했다.
또 피고 대한민국의 증인으로 나온 여수 애양병원장 출신의 김인권 정형외과 전문의는 "정관절제수술을 하고 싶은 의사들은 없고 기분 좋게 받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한센인들이 소록도에서 살려면 할 수 없이 정관절제수술을 해야 했는데 과거 일에 대해 지금 와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고 이같은 이분법적 논란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제시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