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스캔들과 법조 비리 사건, 그에 따른 검찰 개혁 논의, 굵직한 대기업 수사 등 현안이 산적한 와중에도 김수남 검찰총장이 여름휴가를 '반납'하지 않기로 했다.
임기 첫 해, 조용한 자택휴가라도 보란 듯 떠나야하는 까닭은 단지 개인이 아닌 검찰 구성원들에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김 총장 본인과 내부 의견이 반영된 결정이다.
김 총장은 다음달 1일부터 닷새간 여름휴가를 보낼 계획이다. 다만, 자택에 머무르며 주요 사건에 대해서는 통상 수준의 보고를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관계자는 "김 총장이 책 몇 권과 영화 몇 편을 관람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계획 없이 자택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지만 필요한 보고는 받을 것"이라며 "일선청에도 적절한 휴식을 권장하기 위해 내린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총장의 몸은 집에 있되 마음은 대검에 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갖가지 사건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처가 부동산 매매 의혹 등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고소·고발 사건이 접수돼 배당된 상태이고, 김 총장이 직접 임명한 특임검사팀은 진경준 검사장 뇌물수수 사건을 수사 중이다.
총장 직할대인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중앙지검에는 롯데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가 한창이다. 동영상 보도로 파문이 일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의혹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다.
'휴가인 듯 휴가 아닌 휴가'가 될 수밖에 없는데도 김 총장이 자리를 잠시 비우기로 한 건 검찰의 '힐링' 역시 그가 풀어야할 숙제라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검사와 수사관들이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로 숨지거나 입원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검찰 내 분위기가 한마디로 뒤숭숭하기 때문이다.
부장검사의 폭언 등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돼 감찰이 진행되고 있지만 현직 검사가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지난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순천지청 검사가 질병으로 사망하는 일도 최근 있었다.
지난 21일에는 서울중앙지검의 40대 일반직 간부가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이고, 지난달 동부지검의 한 30대 수사관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숨지는 불상사도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검 고위 관계자는 "어쩌다 한 번씩 일어나던 일이 올해는 유독 잦아 사기 저하가 심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달 대검 확대간부회의를 매듭지으며 "휴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생각으로 적절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 있게끔 여름휴가 계획도 미리 세워서 알뜰하게 다녀오기 바란다"고 했다. 결국 직접 본보기가 되기로 한 셈이다.
실적 경쟁과 복잡해진 사건 처리 업무도 과로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검찰 내 대책 마련도 김 총장은 지시했다.
고검장들이 팀장을 맡는 태스크포스가 형사부 검사실 운영방안과 수사관 등의 효율적 인력관리 등에 대한 모색에 들어간 상황이다.
매주 하루는 일 중심의 직장문화에서 벗어나 정시 퇴근 뒤 가족과 시간을 보내도록 장려하는 캠페인을 본떠 수요일에 야근을 하면 사유서를 검사장에게 제출하도록 한 대검 부서도 있다.
직원들이 심리상담을 받으면 비용을 전액 지원해주거나 일주일에 두 차례 점심시간을 이용해 음악감상을 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는 등 검찰은 지금 '쉼표'를 강조하고 있다.
대형 수사만큼 내부 추스르기도 검찰총장의 당면 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