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성 시인의 그림 에세이 '시인의 그림'이 출간되었다. 총 91편의 그림과 나눈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시인은 얼마나 그것들을 들여다보았던 것일까. 그림들은 또 얼마나 많이 화답해 주었던 것일까. 저들이 나눈 교감의 깊이가 지면 곳곳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웅숭깊다. 그래서인가 눈길을 잡아끄는 편편의 이야기들이 허투루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한다. 그것들은 마치 펜의 고요처럼 사각거리며 새어나온다.
프레더릭 레이턴, <타오르는 유월="">, 1895, 캔버스에 유채, 120x120cm, 폰세 미술관타오르는>
영국화가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유월="">에 대한 단상을 이학성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여름의 꿈="">. 태양의 팔베게를 베고 누웠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의 동침을 기다렸다. 긴 머리채를 풀어 내리고 덴 듯 타오르는 그의 손길을 허락했다. 아흐레 내내, 그의 등짝을 어루만지며 뜨겁게 달아오른 사랑을 나누었다. 그의 용모를 빼 닮은 튼실한 사내아이 하나 잉태하고 싶었다. 열흘째 되는 날, 단숨에 그를 삼키고 아름다운 만삭의 몸이 되었다. 마침내 저 태양의 침식 가득히 젖먹이아이의 울음소리가 뜨겁다. 가슴을 끌러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 그러나 눈이 부셔 울고 있는 아이를 찾을 수가 없다. 몇 번이나 팔을 내뻗어 허공을 휘저었던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뜨거운 울음을 토하고 있는 태양의 아이. 마침내 깨고 나면 저 눈부신 여름의 햇살마저도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인가."
이주은 교수도 신간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에 이 작품 '타오르는 유월'을 다루고 있다. 그 내용을 비교해보자.
"프레더릭 레이턴이 그린 '타오르는 유월'에서는 또 다른 아리아드네가 바닷가 근처 전망 좋은 방에서 잠들어 있다. 작품의 제목만으로는 이 여인이 아리아드네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워터하우스가 그린 아리아드네와 비슷하게 짙은 주홍색 드레스를 입고 눈부시게 황홀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머리 위쪽으로 바다가 보이는데, 테세우스의 배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붉은 석양빛이 드리웠지만,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눈을 뜨는 순간 테세우스의 부재가 사실로 굳어져버릴 터이니, 차라리 오래오래 깨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두 저자가 끌어들인 이 작품 속 여인은 잠에 완전히 취해 그 자체로 충만하다. 슬픔이나 두려움 따위는 전혀 모른 채. 잠에서 깨어 현실의 세계를 의식하는 순간, 그 충만함은 덧없이 사라지고 부재와 결핍을 느껴야 하는 하는 운명이다.
이학성 시인은 말한다. 그림의 힘은 얼마나 놀라운가. 들여다볼수록 얼마나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하는가. 저들이 던지는 아름다운 마력에 그 무엇을 견주겠는가. 그래서 어떤 그림은 온 생애를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울림의 말을 쏟아내고 커다란 영감을 불어넣는다. 삶의 기쁨이 무엇인지 노래하게 하고 그 찬가를 낱낱이 기록하게 한다. 때로 그것들은 “생의 좌절에서 일으켜주었고, 땀과 일굼의 가치를 알게 해주었으며,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배움과 진리의 숭고함을, 진실과 거짓이 왜 다르며, 희생과 분배와 정의가 무엇인지 일깨워주기도 했다”고 시인은 그림과 동행한 낱낱의 사정을 이 책에 털어놓는다.
저토록 시인의 그림 사랑이 각별하다. 총 91편의 그림과 나눈 곡진한 이야기들이 이채롭다. 세간에 덜 알려진 다수의 그림들을 접하게 되는 기쁨도 크다. 어찌 그것들이 낡았으며, 숨과 온기가 다한 것이라고 말하랴.
“책상에 엎드려 그것들을 얼마나 많이 들여다보았던가. 그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을 바꿔놓을지 어찌 알랴. 거듭 또 거듭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또 얼마나 아늑한 꿈을 꾸었던가. 신비하게도 이 그림들은 들여다볼 때마다 각기 다른 목소리로 말한다. 이 책은 그 울림과 신비의 일부를 채록한 흔적이다.”
시인은 여전히 그것들 속에서 사랑과 희망을 꿈꾼다. 안식과 고요를 꿈꾼다. 누구든 이 책을 펼쳐든 순간, 그것이 어찌 그만의 것일 수 있으랴. 아무리 시간이 흐른들 어찌 그들이 퇴색하겠는가. 저들이 있어 세상은 더욱더 영롱하게 반짝거리거늘.
여름의>타오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