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차례 고의 충돌 시도…명백한 살인미수""100t 정도 되는 중국 철선이 고속단정을 향해 여러 차례 충돌을 시도했다는 것은 살해 의도가 있었다는 겁니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조동수(50·경위) 단정장이 언론에 밝힌 심경이다.
그는 지난 7일 오후 인천 옹진군 소청도에서 남서쪽으로 76㎞ 떨어진 서해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 나포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중국 어선에 들이받히는 순간 가까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해상특수기동대원 8명은 중국어선에 올라 철문으로 폐쇄된 조타실 안으로 진입을 시도 중이었다.
조 단정장은 "대원들이 모두 고속단정에 타고 있었다면 인명피해가 클 수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당시 아찔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동안 중국어선이 단속을 피하고자 해경 고속단정을 향해 충돌을 시도한 적은 많지만, 실제로 들이받아 침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국, 해경은 중국어선 나포에 실패하고 빈손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주성 중부해경본부장은 9일 "중국어선의 불법조업과 폭력저항이 도를 넘었다"면서 이번 사건을 '살인미수'로 규정했다.
◇ 중국 선원 저항 '흉포화'…무력한 '공권력'이처럼 해경의 단속에 맞서 중국 선원들의 저항이 흉포화하면서 인명 피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해경 대원이 등선하지 못하게 중국 선원들이 쇠 구슬이나 볼트를 던지거나 선상에 오른 대원을 향해 쇠파이프나 낫, 망치, 손도끼 등 흉기를 휘두르며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12월 인천해경 특공대원 이청호 경사가 중국 선장이 휘두른 유리 조각에 찔려 숨졌다.
또 2008년 9월에는 목포해경 박경조 경위가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순직했다.
최근에는 중국어선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평도 해상에서 해경 단속요원 14명을 그대로 태운 채 북으로 도주하는 아찔한 상황도 빚어졌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해경의 단속 과정에서 중국 선원들이 실탄이나 고무탄에 맞거나 불에 타 숨지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되풀이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속에 나선 우리 해경이 장비나 인력 면에서 중국 어선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고속단정 침몰사고'도 중국어선(100t급·철선) 40여 척이 불법 조업 중이었는데도 대원 19명을 고속단정(4.5t) 2척에 나눠 태워 나포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고의 충돌'을 시도하며 떼로 몰려드는 중국 어선들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해양경비안전본부는 지난 3월 서해 5도 해역에 경비함정을 3척에서 6척으로 늘리며 불법조업 엄단 의지를 과시했다.
또 9월에도 "가을 성어기를 맞아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이 예상된다"며 "경비함정 2척을 서해 5도에 추가 배치한다"고 밝혔다.
◇ "중국어선 대형화…서해5도해경 신설 서둘러야"하지만, 중국어선 불법조업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정도의 대응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만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중부해경 양동신 경비안전과장은 "중국어선 나포는 해경 대원들이 기본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며 펼치는 작전"이라며 "장비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해5도해역과 특정해역 등을 전담하는 '서해5도해양경비안전서'를 신설하는 방안이 이번 '고속단정 침몰사고'를 계기로 커다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어선이 점차 대형화되는 데다 조업방향도 단속을 피해 단순히 NLL을 넘나드는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나 남서쪽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들락거리는 등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해5도중국어선대책위 조현근 간사는 "100톤급 철선 수십 척을 고무보트 수준인 고속단정 2척으로 제압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조 간사는 이어 "중국어선 불법조업 문제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해경 부활을 기본으로 '서해5도해경' 신설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안전처는 내년 말 경북 울진에 인력 250여 명과 크고 작은 함정 10여 척을 배치해 울진해양경비안전서를 신설한다.
포항해경은 그동안 울진·영덕군과 포항·경주시 바다를 모두 담당했으나, 해역이 워낙 넓어 해경을 신설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서해5도해경도 서둘러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과 인천지역 시민사회의 바람이다.
특히 해경 본부가 지난 8월 세종시로 이전하고 인천 해경이 해경부두와 차량으로 40분이나 떨어진 송도 청사로 옮기면서 '현장 대응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서해5도해경 신설에 힘을 싣고 있다.
◇ '엄중 항의?'·'엄중 대처?'…말치레뿐인 정부
국민안전처는 그러나 서해5도해경 신설은 물론, 어민들이 요구하는 불법조업 단속을 전담하는 '기동전단 상설화'에 대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최근 서해5도대책위에 보낸 답변서에서 "기동전단을 상설화할 경우, 치안 수요가 적은 시기에 경비함정 정비 및 수리 등 함정관리에 제약이 따르고 승조원의 2교대로 인한 피로도가 증가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결국 서해5도 어민들을 위해 필요한 해경 인력과 장비 투입을 크게 늘릴 의사가 없음을 내비친 것이다.
정부는 서해5도 해역에서 중국어선 불법조업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엄중 항의’와 ‘엄중 대처’를 천명해왔다. 이번에도 똑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 정부를 상대로 단기간에 얼마나 외교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