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박모(38) 씨는 최근 친구들과 함께 종로구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평소엔 맥주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뭐로 드릴까요"라고 물었지만 이번에는 종업원이 자연스럽게 오비맥주의 카스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박 씨가 종업원에게 "하이트나 맥스는 없느냐"고 묻자 "지금은 카스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회사원 이모(44) 씨도 을지로 식당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개인적 취향 때문에 하이트만 마시던 이 씨는 물어보지도 않고 카스를 가져온 종업원에게 "하이트로 달라"고 했다가 "하이트는 다 떨어지고 없다"는 답변을 듣고 황당했다.
이 씨는 "이 식당을 오랫동안 다녔지만 하이트가 떨어진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시내 일선 요식업소에서는 오비맥주가 지난달 1일부터 카스와 프리미어OB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 인상한 이후 하이트 맥주를 팔지 않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하이트의 가격 인상을 예상한 일부 업주들이 가격이 오르기 전에 대량으로 사놓은 맥주를 가격이 오른 뒤에 비싸게 팔아 차익을 남길 요량으로 일부러 비축해놓은 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종로구 A식당 업주는 "우리 집뿐 아니라 주변 식당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며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놓았다가 가격이 오른 뒤에 비싸게 팔면 짭짤한 차익을 남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원래부터 특정 회사의 맥주만 취급하는 업소도 있지만 오비와 하이트를 같이 취급하다가 재고차익을 노리고 일부러 하이트를 내놓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1위인 오비맥주의 출고가 인상 이후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클라우드) 등의 동반 인상을 예상한 업주들이 재고차익을 노리고 일부러 이들 제품을 사재기한 뒤 일부러 팔지 않는 매점매석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의 관행에 비춰봤을 때 오비가 먼저 제품 출고가를 올리면 하이트와 롯데주류는 통상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의 간격을 두고 따라서 가격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으나 예상과 달리 두 회사는 아직도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소주의 경우에는 지난해 말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가 먼저 제품 출고가를 올리자 약 한 달 간격을 두고 롯데주류가 뒤따라 가격을 올린 바 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2일 "많은 사람들이 오비가 가격을 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트도 가격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직은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며 "올해 안에 올릴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근 오비맥주에 밀리며 점유율 하락으로 고심해온 하이트는 오비의 출고가 인상 이후 양사 제품 간 가격 차가 벌어지면서 가정용을 중심으로 점유율이 일부 상승하는 추세가 나타나자 가격 인상 시기를 다소 늦추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