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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 평생 제일 잘한 일이죠" 미혼모들의 설맞이

사회 일반

    "아이 셋, 평생 제일 잘한 일이죠" 미혼모들의 설맞이

    아이랑 빵 굽고 연애 상담하느라 오히려 '북적북적'

    미혼모 김지연(42) 씨가 어린 두 어린 딸들에게 그림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설을 맞아 김지연(42·여) 씨의 손이 분주하다. 부엌 탁자엔 연휴 전날 사온 올리브, 피망, 햄, 고기 등이 올려져있다. 남들은 설에 전을 부치지만 김 씨에게 설날은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만드는 날이다.

    김 씨는 "아이들이 '피자'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쓴다"면서 "밀가루 반죽만 준비해주면 아이들이 알아서 원하는 재료를 토핑한다"고 말했다.

    만두도 빚는다. 특히 이번 설에는 4살배기 막내딸이 처음으로 만두 빚기에 도전한다.

    김 씨는 "만두 모양이 동그라미, 세모, 네모 다양하겠지만 6살 난 둘째딸 손끝이 야무지니 걸 봐선 막내딸도 곧잘 따라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 씨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우는 미혼모(未婚母)다. 그래서 외동딸인 김 씨는 10년째 어머니 얼굴을 보지 못했다. 미혼모 딸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 씨는 어려운 살림이지만 남의 가정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홀로 꿋꿋이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15살 사춘기 아들의 연애상담도 김 씨의 몫이다. 아들은 여자친구만 만나고 오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엄마와 나눈다.

    외동딸인 김 씨는 가족과 왕래가 없어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이 셋을 낳은 걸 후회한 적은 없다.

    그는 "사십 평생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은 이 아이 셋을 낳았다는 것"이라면서 "엄마 앞에서 뽀로로 춤을 따라하는 딸과, 예민한 시기에도 먼저 다가와주는 아들이 주는 기쁨이 정말 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세배를 하는 아이들에게 작년과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건강하고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자"고 말해줄 계획이다.

    ◇ "아이 덕분에 우리 엄마가 180도 달라졌어요"

    미혼모 최연우(34) 씨의 딸아이가 눈내리는 야외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옆에서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할아버지

     

    미혼모 최연우(34·여) 씨는 서울 강북구에서 부모와 함께 살면서 10개월 된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언제부턴가 딸아이가 이유식을 하면서 아이를 향한 할머니의 물량공세가 시작됐다. 최근엔 아이에게 군고구마를 먹이고 싶어 최 씨의 어머니가 직접 전용냄비까지 사왔다.

    하지만 부모님이 원래부터 딸과 손녀에게 살가웠던 건 아니었다. 지난 설 최 씨의 배가 더 불러오면서 그를 향한 부모님의 시선은 따가워졌다. 특히 어머니는 최 씨가 출산한 뒤에도 아이만 보면 연거푸 한숨만 내쉬었다.

    하지만 아이가 윙크를 하고 손짓발짓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집안의 한숨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최 씨는 "아이로 인해 엄마에게도 따뜻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가정 분위기가 정말 화목해졌다"면서 "설에 가족끼리 더 웃고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인정받은 최 씨는 이제 나가서도 당당히 자신이 미혼모임을 밝힌다.

    ◇ "아이에게 못해준 백일상 차리려고요"

    미혼모 김모(32)씨의 아이가 신생아 때 입은 배냇저고리와 손·발싸개

     

    서울 강남구에 사는 미혼모 김모(32·여) 씨는 요즘 아이의 100일상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미 생후 5개월 된 딸이지만 100일 날 아이가 아파 응급실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던 탓이다.

    김 씨는 설을 맞아 아이에게 간단하게 백일상을 차려주고, 자신의 사정을 잘 아는 친구를 불러 함께 기념촬영도 할 예정이다.

    김 씨는 "서울에서 혼자 살다보니 명절이 큰 의미가 없었는데, 이젠 항상 울고 기어 다니는 아이가 생겨 뭐가됐든 북적북적하지 않겠느냐"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김 씨는 또 설 연휴를 이용해 틈틈이 육아 관련 책도 읽고 있다. 그는 "아이가 생기니까 미래에 대해 예전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게 됐다"면서 "쉬는 날에도 짬을 내서 공부하는 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한 이유를 묻자 김 씨는 "처음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듣고 눈물부터 나왔다"면서 "이후 낙태는 꿈도 못 꾸게 됐다"고 말했다.

    ◇ 사회적 편견 못지 않게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들어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엔 2만 4487명의 미혼모와 2만 8905명의 미혼모 자녀가 있다.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미혼모의 특성상 이 수치마저도 일부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만난 미혼모들은 하나같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며 가장으로서 꿋꿋이 한 가정을 이끌고 있었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은 한목소리로 "나중에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도 당당하려면 나부터 먼저 떳떳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 만큼이나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미혼모 인정에 따라 받는 정부지원금(아동양육비)은 월 17만원(만 24세까지), 25세 이상은 15만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지난 2015년 한자녀 평균 양육비 64만8000원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는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실무진들 체감상 미혼모의 절반가량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면서 "주로 출산 직전과 직후 모아둔 돈을 다 쓰게 되는 미혼모들이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작 이들이 다시 일자리를 잡으려고 해도 사회적 차별 때문에 재취업이 어렵고, 가족들로부터 인정도 받기 힘들어진다"고 덧붙였다.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교수는 "미혼모들이 가정 내외에서 겪는 차별이 결국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꼴"이라면서 "스웨덴에선 정부가 미혼모 가정에 우선 금전적으로 지원을 한 뒤, 아이의 아버지가 소득이 있을 경우 아버지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제도적 장치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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