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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잔혹사'…죽음으로 말하는 동물들

사회 일반

    동물원 '잔혹사'…죽음으로 말하는 동물들

    기린, 맨드릴, 벵골 호랑이 등 일 년 새 세 마리 폐사…갈 길 먼 행복동물원

    소풍, 데이트, 가족나들이 등 사람에게 행복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동물원은 그러나 정작 그곳의 주인인 동물들에게는 슬픈 공간이다. 좁은 울타리, 다른 기후, 열악한 시설 속에 갇혀 살며 동물 대부분은 운동 부족으로 인한 질병과 근육 손실, 이상행동의 위협 속에 이른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1978년 6월 당시 지방 최대 규모로 개원한 전주동물원에서는 최근 1년 새 대형 포유동물 세 마리가 잇달아 죽음을 맞이했다. 요절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동물원 동물들의 삶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전주동물원에서 최근 일 년새 잇달아 폐사한 기린과 맨드릴, 벵골 호랑이. (사진=전주동물원 제공)

     

    평균 40년쯤 사는 맨드릴은 16살, 25년은 족히 사는 기린도 16살에 죽음을 맞이했다. 13살에 죽은 벵골 호랑이는 평균 수명에 근접했지만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삶을 마감했다.

    전주동물원에서 일 년 새 죽은 대형 포유동물 세 마리는 죽음을 통해 각기 다른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관절염에 시달리던 전주동물원 기린 '신화'가 생활하던 공간. 경사로를 없애는 공사를 마친 뒤 열흘도 되지 않아 신화는 폐사했다. (사진=전주동물원 제공)

     

    ◇ 관절염 기린, 얼마나 아팠을까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었던 기린 '신화'는 2002년 전주동물원 식구가 됐다.

    그러나 다섯 살이던 2006년, 죽는 날까지 신화를 괴롭힌 관절염이 시작됐다. 왼쪽 앞다리를 절룩이는 기린이 된 것이다.

    신화는 2015년 8월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몸무게 1.5t의 대형동물은 수의사와 사육사 등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일어섰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다시 쓰러졌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사인은 급성 심부전. 관절염을 버티지 못해 쓰러진 뒤 육중한 몸무게 탓에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죽음에 이른 것이다.

    전주동물원 서세현 계장은 "부검을 해보니 왼쪽 앞무릎 연골이 닳아서 없어져 있었다"며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렸을 것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신화가 생활해 온 방사장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더 큰 문제는 내실에서 방사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 15도 이상으로 경사도가 급했다는 점이다. 육중한 몸으로 경사로를 내려오는 와중에 관절염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주동물원은 지난해 신화의 생활공간에 경사로를 없애는 평탄화 작업을 하고 바닥을 흙으로 채우는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일주일여 동안 신화는 좁은 내실에 갇혀 있었고 공사가 끝난 뒤 열흘도 채 되지 않아 죽음에 이르렀다.

    ◇ 오전엔 '이상 무(無)', 오후에 죽은 맨드릴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에 등장하며 익숙해진 맨드릴은 긴꼬리원숭잇과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의 어느 날 오후 전주동물원에 사는 맨드릴은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폐사 당일 오전 동물기록에는 이상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사인은 전립선비대증과 췌장 출혈이었지만 기록상으로만 보자면 멀쩡하던 동물이 급사한 셈이다.

    전주동물원 관계자는 "매일 아침과 오후 최소 2차례 예찰을 했고 먹이 섭취량에도 변화가 없었다"며 "야생동물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도태되는 약육강식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질병이 있어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숨기려 한다"고 말했다.

    정기검진이 없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전주동물원은 지난해 7월 원내에 동물병원을 신축했다. 그러나 전주동물원의 의료체계가 갈 길은 멀어도 너무 멀다.

    현재 전주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은 103종 611마리. 이에 비해 수의사는 2명, 사육사는 11명에 불과하다. 수의사 2명이 하루 2마리씩 정기검진을 한 다해도 반 년은 족히 걸리는 등 인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재익 전북대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교수는 "정형외과, 내과 등 사람에 대한 의료 전공이 다르듯 수의사가 볼 수 있는 종은 2~3개에 불과하다"며 "동물 수 뿐 아니라 종에 비해 수의사와 사육사가 너무 적은 편이다"고 지적했다.

    생태동물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전주동물원은 폐쇄된 공간이었던 늑대사를 개방된 공간으로 변경해 몰입전시를 진행하고자 한다. (사진=전주동물원 제공)

     

    ◇ 더딘 개선, 이른 죽음의 속도

    전주시는 지난해 1월 전주동물원을 슬픈 동물원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원으로 만들겠다며 생태동물원 조성 기본계획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늑대사를 몰입전시관 형태로 바꾸고, 고라니 방사장을 두 배로 늘리고, 겨울새가 따뜻하게 쉴 수 있는 온열바위를 설치하는 한편 곰의 방사공간 콘크리트 바닥을 걷어내는 등 환경 개선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부족하고 속도 역시 더디다고 지적하고 있다.

    육중한 무게 탓에 관절염과 발바닥 염증에 취약한 코끼리는 여전히 콘크리트 바닥에 살고 있다. 전주동물원의 코끼리 '코돌이'는 염증 등의 증세를 보이며 이상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유인원류, 아메리카들소 등 비슷한 상황에 처한 동물 역시 적지 않다.

    임채운 전북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기존의 동물원은 전시와 오락, 교육과 종보존의 역할을 해왔다"며 "이제는 사람을 위한 전시와 오락 대신 동물을 위한 복지와 연구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폐쇄적 구조를 바꾸고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동물원이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박정희 전북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은 "전주동물원은 시민과 함께하는 동물교육이나 자원봉사 등 참여형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 한다"며 "시민과 아이들에게 동물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리고 시민과 함께 동물의 복지를 꿈꾸고 동물원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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