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은 전체 상장사의 절반 가까이가 주주총회를 여는 슈퍼 주총데이다.
하지만 한날 한시에 주주총회가 열리면서 여러 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는 힘들어져 주주 친화적인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4일에 정기주주총회를 여는 상장법인 924개사이다. 이는 12월 결산 상장법인 2,070개사의 44.6%에 이르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거의 대부분 이날 오전 9~10시에 주주총회를 연다.
한날 한시에 이처럼 많은 상장사가 주총을 하는 것은 역대급이다.
여기에는 삼성과 SK, 롯데, CJ그룹의 계열사들,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KB금융지주, 우리은행, 미래에셋대우 등 주요 대기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처럼 여러 기업이 한날 한시에 주총을 여는 것은 올해만의 문제는 아니고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2016년에는 3월 25일(금)에 818개사, 2015년에는 3월 27일(금)에 810개사가 주총을 열어 그 해의 슈퍼 주총데이로 기록됐다.
상장사들 사이에서는 3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주총을 여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마지막 금요일인 31일을 피해 24일이 슈퍼 주총데이가 됐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상장사들이 한날 한시에 주총을 여는 바람에 여러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소액주주들은 관심있는 주총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상장사들은 12월 결산을 하고 이사회를 거쳐 주총날짜를 잡다보니까 공교롭게도 겹치게 됐다고 하지만 소액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암묵적인 담합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소액주주가 주총에 적게 오는 것을 선호한다. 와서 괜히 쓸데없는 요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동시에 주총을 연다고 의심할 만하다. 주총 날짜는 회사가 알아서 정하는 것으로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암묵적 담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동일 그룹의 계열사끼리는 정보를 주고 받아 한날 한시에 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주총에서 1주 1의결권의 원칙에 따르면 소액주주들이 배제되고 대주주의 의견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풍토 속에서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얘기하기가 힘들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대주주의 의사 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의 다양한 의견들도 회사경영 의사 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총에 기대하는 역할이다. 소액주주들도 회사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이 정상적으로 수행될 때 기업의 경영성과나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긍정적으로 좋아진다는 것이 해외 사례를 통해 보여지고 있다. 슈퍼 주총데이는 사라져야할 경영 문화"라고 말했다.
슈퍼 주총데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인 측면의 문제점도 제기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총을 열려면 주식수에 따른 의사, 의결정족수를 채워야 하는데 이를 지난 199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셰도우보팅(shadow voting)제도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이 제도는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예를 들어 동일한 지분을 가진 주주가 백명인 회사의 주주총회에 10명의 주주가 참석해 특정 안건에 대해 7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했을 경우, 참석하지 않은 나머지 90명의 주주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율로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섀도우보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소액주주가 참여하지 않아도 주총을 열 수 있어 아쉬울 게 없는 셈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지난 2015년 1월부터 셰도우보팅을 폐지할 예정이었으나 그럴 경우 정족수를 채울 수 없어 주총을 열기 힘들어진다는 상장사들의 반발로 폐지를 2017년말까지 3년간 유예한 상황이다..
하지만 셰도우보팅이 2017년말에 폐지될지는 그 때 가봐야 알 것이란 의견도 많다.
슈퍼주총데이는 '사라져야 할 경영문화'지만 이것이 계속 이어질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전자투표제의 확산이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상법 개정을 통해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기업이 채택여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용수준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전자투표관리기관인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6년에 주총에서 전자투표를 채택한 회사는 541개사이지만 이들 회사에서 전자투표 행사율은 1.82%로 매우 저조한 편으로 나타났다.
전자투표 채택회사가 5백여개에 이른 것은 셰도우보팅제도를 2017년말까지 유예시키면서 전자투표 채택회사에 한해 셰도우보팅을 허용하도록 했기 때문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채택회사 수는 제법 많지만 행사율이 저조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전자투표 채택회사가 5백여개에 이르지만 여기에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빠져있는 것도 문제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전자투표 채택은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전자투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특히 삼성과 LG, 현대차, SK 등 주요 재벌그룹 계열사들 가운데 전자투표를 채택한 곳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소액주주의 경우 슈퍼 주총데이에 전자투표도 행사할 수 없어 이들 재벌기업 주총에서 동시에 의결권을 행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매우 힘든 셈이다.
이것은 주주 친화적인 경영문화의 확립이 강조되는 글로벌 트렌드와는 역행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상장기업들, 특히 재벌기업의 인식변화와 함께 전자투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황세운 실장은 강조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와 기업간의 접점을 확대하는데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특히 IT기술을 활용해 주주총회 운영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은 필연적인 변화의 방향성이므로 전자투표제의 활용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