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참석하면서 침묵을 지킨 채 취재진을 질문을 외면하고 법정으로 들어갔다.
사실상 국민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직접 입장을 전달할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 흔한 '송구하다'는 말도 남기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심경에 변화를 일으키지 않은 한 여전히 뇌물죄 등 각종 혐의를 부인하면서 자신이 구속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의 결백 주장은 셀수 없이 많은 직·간접 증거들을 봤을때 공허할 뿐이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삼성공익재단 주인은 '삼성'…미르·K재단 주인은 '朴·崔'우선 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검찰 대면 조사과정에서 "내가 430억 원 뇌물 받으려고 대통령 된 줄 아느냐"고 강하게 항변했다는 말이 친박 의원들 입에서 나왔다.
430억 원은 박영수 특검에서 특정한 뇌물액수이고 검찰은 이 가운데 실제 공범인 최순실씨에게 송금되지 않은 돈을 뺀 300억 원 정도만 뇌물액수로 봤다.
이는 '한푼도 받은 게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자신의 측근인 최씨의 도움을 일부 받긴 했지만, 자신은 사익추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세무조사 등 불이익을 우려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박 전 대통령 측에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독대해 출연을 강요한 정황이 특검과 두번의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 측에선 재단 출연이 어떻게 뇌물이 되느냐는 입장이다. 변호인단인 손범규 변호사는 "개별기업의 출연행위로 재단이 탄생한 것이고, 이러한 행위는 이른바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라며 "뇌물을 받을 주체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뇌물을 주고받았다는 말을 하는 셈인데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이는 정상적인 절차로 재단이 만들어졌을때 해당될 수 있는 말이지만, 불행하게도 미르·K재단은 이와 거리가 멀다. 두 재단의 설립과정에서 서류가 조작된 것은 둘째치고, 재단은 돈을 내는 쪽과 주인 행세를 하는 '상대'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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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단 만들어 최순실 돈벌이에 활용…공익=최씨 사익?박 전 대통령의 심부름을 받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출연금을 '수금'하기 위해 동서분주하면서 이런 과정을 업무 수첩에 빼곡히 적어뒀다.
안 전 수석뿐 아니라 고영태, 노승일 등 재단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두 재단의 배후로 청와대와 최씨를 지목하고 있다. 안 전 수석과 김종 전 문체부 차관 등 국정농단의 조연들도 모두 박 대통령을 배후로 꼽았다.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두 재단도 분명히 '주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공익재단이라도 세상에 주인없는 재단은 없는 법이다. 삼성그룹이 문화재단, 복지재단, 공익재단 등 공익성을 가진 재단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재단의 주인은 삼성인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공공성을 부각시키려 해도 미르·K재단의 주인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주인인 재단에 돈을 출연하라고 한 것이 '뇌물'아니면 뭐가 될 것인가.
검찰 관계자는 "뇌물을 받아서 복지기관에 기부를 했어도 뇌물은 뇌물"이라고 했다.
770억 원을 출연한 기업들을 뒤로 하고 재단 관련 인사과 운영은 전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좌지우지 했다.
재단의 주체가 돼야할 기업들은 돈만내고 아무 권한도 행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두 재단과 최씨 개인회사인 더블루케이, 플레이그라운드 등을 사업적으로 연계해 돈을 빼낸 점을 봤을때 '공익'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최씨의 사익=공익'이라는 허망한 결론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구 북구 창조경제단지 예정부지를 방문한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 재벌 총수 독대 "지원하라"…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적폐
두 재산에 대한 출연금이 뇌물이라는 증거와 논리는 누구말처럼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또 "최씨가 이렇게 사익을 추구했는지 몰랐다"고도 했다. 하지만 두 재산 설립과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데도 박 전 대통령은 깊숙이 발을 담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정씨에 대한 지원을 독촉하고 압박했다.
최고 권력자가 기업 총수를 대면하고 돈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자발적인 출연'으로 포장하는 것은 박정희·전두환정권 등 군사 독재시절에 있었던 일과 판박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 없었던 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운명을 재촉하고 있다. 증거없이 결백만 주장하면서 사법기관이 정상 참작할 여지를 잘라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