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부실조사와 황제 조사 논란으로 수없는 스캔들을 일으킨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최선을 다했다"는 검찰의 셀프 고백과 달리 부실하게 이뤄진 사실들이 재판정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재판에서도 우 전 수석에 대해 유죄를 이끌어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 태도를 보여 재판부로부터 추가 수사 지시를 받는 등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영훈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우 전 수석에 대한 8차 공판에서 우병우 피고인측의 증인인 문체부 윤 모 전 과장을 불러 신문했다.
윤 씨는 작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지시로 좌천된 6명의 문체부 국.과장에 대한 '세평'(세간 평가)을 김종 전 차관과 청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문체부 내부에선 사실상 우 전 수석측 입장과 궤를 같이했던 인물로 평가된다.
윤씨는 이날 재판에서 앞서 증인으로 출석했던 김 종 전 차관이나 특별감찰반의 김 모씨 증언과 상당히 다른 진술을 했다.
윤씨는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인 김 씨와 "작년 1월 단 한차례만 통화했다"고 증언했지만, 통신조회에선 작년 9월까지 김 씨와 10여차례 음성 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일인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현관에 포토라인과 마이크가 설치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그러나 검찰은 윤씨가 김씨와 문자까지 나누는 등 잦은 접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씨 휴대폰 통신 내역만 조회했을뿐 문자 포렌직 등 강제 압수수색은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윤씨가 재판에서 단 한번만 통화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통화 내역이 많고 문자도 주고 받은 내역이 많다면 통신조회가 아니라 압수수색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검찰의 부실 수사를 꼬집었다.
이에대해 검찰측은 "(지금)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주면 윤씨로부터 휴대폰을 임의제출 받겠다"고 임기응변적으로 응답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윤씨에게 "휴대폰을 바꾼 적 있냐"고 재차 다그쳤고 윤씨는 "휴대폰이 싼 것이어서 작년 6월에 버렸다"는 실토를 받아냈다.
이에 재판부는 "윤씨가 (지금)돌아가면 (버렸다는)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폐기할 우려가 크다"며 법정에서 곧바로 윤씨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강제압수수색 영장을 직권으로 발부했다.
윤 씨가 "버렸다"는 휴대폰을 자택이나 사무실에 숨겨둘 수 있으니 곧바로 압수수색하라는 명령이다.
결국 검찰이 우병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데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명인 윤 씨의 휴대폰 교체사실을 몰랐거나 부실 수사한 정황이 들통난 것이다.
국정농단 방조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다음은 재판부와 검찰측 일문일답이다.
재판부>지금 바로 휴정하고 (윤씨에 대한) 영장 발부하겠습니다. (검찰)어떤가요?검찰측>(윤씨가)휴대폰을 임의제출한다고 하니까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을 받고...재판부>작년 6뤌에 바꾼 휴대폰은 (확보하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까? 민정수석실 특감반 김 모씨와 통화나 문자를 언제 주고 받은 거에요?검찰측>문자 메시지는 작년 6월 이전 것을 확보해야긴 합니다. 압수수색 영장은 재판장이 직권으로 발부해주시면….재판부>(답답하다는 듯) 압수수색의 범위를 줘야죠. 증인 집이 어디고 어딜 뒤져야 하는지 모르거든요. 뭘해야 하는지 자료를 줘야 발부해줄 것 아닙니까?재판을 지켜 본 한 방청객은 "윤씨가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혐의를 입증할 중요한 사건 당사자인데도 휴대폰 압수수색 조차 하지 않았다니 도대체 검찰이 무슨 수사를 했다는 건지 납득이 안된다"며 "이러니 '황제 조사'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냐'고 개탄했다.
◇ 재판부 "김 종 전 차관과 윤씨 대질신문 실시해라" 지시재판부의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부장판사는 "윤씨와 김 전 차관의 증언 차이가 너무 크다"며 검찰에 "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에 대해 대질 조사를 했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대질조사를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자, 재판부는 "두 사람을 대질시켜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고 검찰에 요구했다.
재판부는 "윤씨가 어떤 의도로 좌천된 문체부 국과장에 대한 세평 자료를 수집했는지가 이 사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검찰에 지침을 내렸다.
다른 방청객은 "재판을 지켜보니 재판장이 검찰 수사를 직접 지휘하는 것 같다"며 "마치 수사를 잘못한 담당 검사를 부장검사가 혼내는 모양새"라고 비꼬았다.
한편 우병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는 수사 과정은 물론, 영장청구와 기소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부실 수사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검찰은 '세월호 수사 외압' 같은 핵심적 직권남용 의혹에 대해선 일찌감치 '민정수석의 정당한 권한'으로 치부해 놓고 '문체부 좌천인사' 같은 지엽말단적 사안만 특정해서 봐주기 기소를 했다는 비판이 높았다.
세월호 외압수사를 위해선 법무부 검찰국과 대검 지휘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그리고 당시 광주지검 수사팀에 대해 내부 칼날을 들이대야 한다는 지적이 높았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고 여전히 캐비닛속에 박아두고 있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철저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철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병우 전 수석을 조사했던 이근수 부장검사(당시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2부)는 이달초 법무부 검찰 인사에서 수원지검 형사 1부장으로 영전했다.
우병우 부실수사 비판이 고조되자 당시 검찰 특수본은 "우 전 수석과 가족들 계좌 수십개를 추적하고, 변호사 시절 수임 내역에 대해 전수조사를 했다. 지금까지 관련자를 60명 넘게 조사해 최선을 다했다"며 작심한 듯 반박했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