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당시 중국 등지를 떠돌며 북송의 두려움과 인신매매 등 범죄 위협에 시달리던 탈북 여성들은 자의반타의반으로 제3국인을 만나 아이를 낳고 길렀다. 이 아이들이 바로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들어오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것은 냉혹한 현실일 뿐. 불우한 가정사로 인한 고통은 물론 각종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CBS노컷뉴스는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낸 숨겨진 비극인 '탈북청소년'들의 실태를 집중 조명하는 연속기획을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분단 역사가 만든 또 다른 비극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② "대학 가기 너무 막막" 사각지대에 놓인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 ③ 배움의 시기 놓쳐 몸만 어른이 된 탈북청년들 |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 여성들은 공안에 끌려가기도 하고, 중국인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도망치기도 한다.
불가피한 이별 뒤, 한국에 자리를 잡은 어머니가 아이를 중국에서 데려오지만, 아이만 바라보면 중국에서의 암울한 기억이 떠오르는 어머니와 성장 과정을 함께하지 못해 애착이 형성되지 않은 자녀의 관계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고, 결국 한국 사회 적응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없다는 아이들탈북자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정모(16) 군은 어머니가 자신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공안에 끌려갔다. 아버지도 도시로 돈을 벌러 가 정 군은 먼 친척의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온 어머니가 불러 지난 2015년에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무려 10년 넘게 떨어져 있던 어머니는 어렵다.
정 군은 "지금도 낯설다. 어머니가 잔소리를 할 때면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학교생활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정군은 살이 35㎏이나 쪘다.
김모(18) 군의 어머니도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 흑룡강성에 자리를 잡았고, 거기서 김 군을 낳았다.
김 군의 어머니도 김 군이 7살이 되던 때 공안에 잡혀갔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헤어져 자랐다. 10년이 지나 모자는 한국에서 재회했지만, 김 군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없다. 진짜 하나도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 군은 다시 만난 어머니가 '지나가는 아줌마'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생각에 상처가 크게 남아있는 그는 차라리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김모(17) 양은 지난 2014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우리가 먼저 들어가고, 중국인 아버지와 동생도 나중에 같이 데려오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내 한국에서 다른 탈북자와 재혼을 했다. 권위적이었던 새아버지는 김양을 미워했다. 김양은 "그 아저씨는 제가 싫었나봐요. 계속 저를 중국에 되돌려 보내려했어요"라고 말했다.
새언니들과도 자주 충돌했다. 경기도의 한 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족 갈등에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김 양은 "1년 동안 거의 하나도 못 배웠다. 집안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계속 우울했다"고 말했다.
◇ 서로가 버거운 母子…심리적 지원 필요지난해 12월 기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전체 탈북 청소년 2517명 중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은 1317명(52.3%)에 달한다.
탈북 여성들은 북송될까 두려워 아이들을 두고 먼저 입국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남아있는 자녀들은 중국 등 제3국에서 아버지와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 쯤, 어느 정도 한국에 정착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입국시키는데, 오랜 기간 떨어져 있던 모자간에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애착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어머니도 자녀를 볼 때마다 과거의 암울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성장과정을 함께하지 못해 이해가 부족하다.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어머니는 중국어가 서툴고, 아이는 한국어가 서툴러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은 "어머니와 아이 모두 서로를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이라며 "자녀들의 남한사회부적응으로 어머니까지 적응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어려움에 비해 정부의 가족관계 지원은 부실한 실정이다.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탈북전담코디네이터는 전국에 22명뿐이다. 탈북민 전체를 담당하는 전문 상담사는 전국에 92명이 있지만, 이들은 1년간 무려 6만 건에 육박하는 상담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예산이나 인력이 많을수록 서비스 공급의 질이 올라가겠지만, 자원이 한정적이라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들의 특수한 상황을 올바로 인식하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의 조정아 선임연구위원은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에 대한 심리적인 지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별도로 정책을 만들기보다 민간의 청소년 상담인력을 활용해 연결해주고, 대안학교를 특화해 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지원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