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교통사고로 숨진 6세 아이를 추모하며 사고현장 주변에 꽃과 과자 등을 놓았다. (사진=A씨 제공)
"다음날 소풍이라 아내와 아이들이 장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지난해 10월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교통사고로 6세 딸을 잃은 A씨 부부의 호소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A씨 부부가 11일 아파트 단지 내에 붙인 호소문은 "주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호소문에는 교통사고로 딸을 잃게 된 자세한 경위와 함께 가해자를 질타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의 아내와 딸은 아파트 단지 내의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던 중, 갑자기 돌진해 오는 가해차량에 치이며 피할 겨를도 없이 쓰러졌다.
블랙박스 확인 결과, 가해차량은 사고 후 즉시 정지하지 않고 더 굴러가 A씨의 딸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됐다.
A씨가 아파트 단지내 붙인 호소문. (사진=온라인 캡처)
사고 후 가해자는 A씨 부부에게 "죗값을 달게 받겠다"며 합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가해자 측은 '금고 2년'을 구형받자 돌연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
A씨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가해자 측이 찾아와 '죄를 달게 받겠다,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사고 바로 다음 날이 소풍이어서 아내와 아이들이 장을 보고 돌아가던 중 아파트 단지에서 차에 치었다"며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이었던 아들은 사고 현장을 모두 목격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끝을 흐렸다.
사고 당시 구급대원인 엄마는 딸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A씨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업으로 해온 자신과 아내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이를 낳고 키운 아파트에서 사고로 딸을 잃었다"면서 "아이와 함께한 추억이 많은 곳이다 보니 아내는 트라우마로 집에도 못들어가고 빈집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사고를 당한 아내 역시 꼬리뼈가 부러진 상태지만 딸의 장례를 챙기느라 입원조차 제때 하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A씨에 따르면 가해자 측은 '충분한 합의'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3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충분한 합의가 이런 건가"며 "나는 딸을 잃었는데 액수를 떠나 그런 돈으로 보상한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해자는 사고 며칠 후 비행기를 타고 가족여행을 갈 정도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우리 가족을 기만했다"고 분개했다.
교통사고가 일어난 장소. (사진=온라인 캡처)
A씨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가해자 측이 도로교통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며 지난 14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는 사유지라는 이유로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에 포함하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안전하게 생활해야 하는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사유지 횡단보도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똑같은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아파트 단지는 사유지로 인정되어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단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속도보다 20㎞과속 ▲앞지르기 방법 위반 ▲철길 건널목 통과방법 위반 ▲횡단보도 사고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 침범 ▲승객 추락방지의무 위반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운전 의무 위반 ▲화물 고정 조치 위반)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맹점 탓에 작년 8월 강서구에서, 9월 김포에서, 그리고 10월 대전 서구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어린이가 차에 치이는 사고가 잇따랐다. 가장 안전해야 할 아파트 단지가 오히려 아이들에겐 가장 위험한 무법지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편, A씨 측은 18일부터 해당 아파트 분수대 앞에서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아파트 주민들은 벌써부터 사고현장 주변에 아이가 좋아했던 꽃과 과자 등을 놓으며 추모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