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 피해 여성의 당당한 폭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후 여성 민주화운동 본격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뒤 여성들의 대공분실 기습시위
-거리 시위와 최루탄 추방운동까지 남성들 못지 않아
-"민주화운동 여성의 투쟁력과 기획력, 이제라도 평가해야"
■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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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금요일의 코너, 훅!뉴스. 오늘은 하루 앞당겨서 만납니다. 목요일의 훅!뉴스, 오늘도 김정훈 기자 나왔습니다. 지난주에 영화 '1987' 속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이근안을 찾아서 현재 심경 전했습니다. 굉장한 화제가 됐었고, 제가 그때 김정훈 기자한테 부탁한 게 있었어요. 후속 취재를 좀 해달라… 그 당시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궁금하다고 했는데, 취재를 해봤다고요?
◆ 김정훈> 영화 1987의 인기가 계속되는데요. 당시를 살았던 중년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고요. 또 젊은 세대들은 잘 몰랐던 현대사의 한 장면을 접하면서 감동하고 있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의 감상평부터 들어볼까요?
[녹취: 관람객]"박종철... 영화 보고나서 감동적이었어요.""유해진이요. 고문 받고도 끝까지 얘기 안 하잖아요. 가족 얘기하기 전까지는… 그게 대단한 거 같아요.""이한열. 마지막에 뒤통수 맞았잖아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이한열군으로 인해서 1987년도 그 시대는 안 살았지만 그 시대에 돌아가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현정> 영화를 보고 나서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 그리고 세상에 진실을 전하려 노력했던 교도관들, 그런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는 거예요.
◆ 김정훈> 그런데 그 감상평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 김현정> 1987 영화 속에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
◆ 김정훈> 바로 여성입니다.
◇ 김현정> 대학생 연희 역할을 했던 배우 김태리씨도 있잖아요.
◆ 김정훈> 아시다시피 연희는 가공의 인물이거든요.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영화였음에도,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야 할 정도로 당시 민주화운동의 흐름에서 사실 여성은 잘 기억되지 않고 있죠.
◇ 김현정> 그러고 보니까, 이름들을 떠올리잖아요. 박종철, 이한열… 그런데 여성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면 잘 안 떠오르네요.
◆ 김정훈> 그런데, 과연 실제로도 여성은 없었을까요?
◇ 김현정> 당시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은 어디 있었을까? 여성의 역할은 뭐였을까, 이걸 취재해오신 거네요. 찾아보니 의미있는 흔적들이 있던가요?
◆ 김정훈>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이 있기 전인 1984년으로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 당시 경찰에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했던 한 피해 여성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 피해자]"여형사가 들어와서 괜찮다고, 다 벗으라고 얘기했었고. 거의 다 벗었는데 남자 형사들이 들어온 거죠.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들어가서 항의했을 때 저 맞았어요. 그게 이 일만이겠어요? 다른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요? 저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김현정> 이게 무슨 말인가요? 경찰서에 끌려왔는데, 옷을 다 벗으라 하고 항의를 하니 때렸다?
◆ 김정훈> 그것도 남자 경찰이요. 1984년 9월, '청량리경찰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시위를 하던 여대생들이 경찰서에 연행돼 왔는데,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에서 남자 경찰한테 모욕을 받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는 거죠.
◇ 김현정> 시위 현장에 분명 많은 여대생들이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성고문, 이것도 성고문‧성추행 아닙니까? 당했다는 거네요.
◆ 김정훈> 피해 여성은 어떻게 했을까요? 사실 무근이라는 경찰의 억지 주장, 그리고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인데, 들어보시죠.
[녹취: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 피해자]"강당에서 제일 먼저 발표를 했었거든요. 다시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때문에 얘기한 거였어요. 운동하는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거잖아요.“◇ 김현정> 경찰은 그 수치심을 노린 거죠? 치욕을 줘서 이제는 입을 막아버리겠다, 이런 얘기예요.
86년 5월 31일 화염병을 던지고 있는 이화여대생들(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제공)
◆ 김정훈> 그렇죠. 하지만 피해자가 용기를 낸 이후 여대생들이 주축이 된 규탄대회, 그리고 기자회견이 잇따랐습니다. 가해 경찰에 직접 책임을 묻는 일은 흐지부지 끝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갓 탄생한 여성단체들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고, 각 대학 여학생회 설립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당시 여성단체였던 '여성평우회' 등에서 활동한 이미경 현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의 말입니다.
[녹취: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청량리성추행 사건이 1차적으로 뭉치는 계기가 됐고요.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도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나중에 여성단체연합으로 묶여진 거예요."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사진=자료사진)
◇ 김현정> 말하자면 1984년 청량리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여성 민주화운동 세력이 조직화하기 시작한 거네요.
◆ 김정훈> 네. 그리고 이어서, 그 유명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터집니다.
◇ 김현정>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권인숙씨가 피해자였죠.
◆ 김정훈> 1986년의 일이었습니다. 5월 3일 인천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해온 권인숙씨가 한달 뒤 경찰에 붙잡힙니다. 조사 과정에서 형사이던 문귀동이 이른바 '5.3 사태' 관련자의 행방을 물으며 자신의 성기로 권씨를 추행하는 고문을 자행한 것이죠.
◇ 김현정> 앞서 1984년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여성 운동가들을 상대로 한 성적인 고문이 가해진 거네요.
◆ 김정훈> 이에 대해 경찰 당국은 권인숙씨를 "급진 좌파 사상에 물든 가출자일 뿐"이라고 매도했고, 그러니 가해자 문귀동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는데, 당시 발언 들어보시죠.
[녹취: 고문 경찰관 문귀동]"성고문이라고 뭐 성고문 성고문 보도하고 하는데, 성고문 한 사실도 없고, 일체 손 하나 댄 사실도 없습니다."
성고문사건 재판에 가위를 들고 재판정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민가협 회원(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제공)
◆ 김정훈> 하지만 피해자 권씨는 그 사건과, 사건 이후의 은폐 시도 속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았고요, 여성계의 꾸준한 규탄 속에 가해 경찰 문귀동은 사건 발생 3년 후 징역 5년을 선고받게 됩니다. 여성을 상대로 한 잇따른 탄압은, 오히려 여성 인권을 부각시키고 여성이 주체가 된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계기도 됐고요.
◇ 김현정> 더이상 민주화운동의 조력차 차원이 아니었어요.
◆ 김정훈> 그렇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진 남영동 대공분실 있지 않습니까? 그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장소에서 처음으로 기습시위를 한 이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것도 바로 여성들이었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 김정훈>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숨진 지 며칠 안돼 수십여명의 여성들이 대공분실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였고요. 일부는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누구였습니까?
◆ 김정훈> 당시 시위를 준비했던 김희선 현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의 말로 들어보시죠.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 (사진=자료사진)
[녹취: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남영동에 전혀 그 근처를 못 가게 했어. 아무도. 한명이라도 가면 다 잡아갔어. 우리 여성의전화가 주동이 돼 가지고 교회여성, 천주교, 구세군 이런 여성들을 모아가지고 '아들이 고문 당해 죽었는데 애미들이 가만히 있는게 말이 되느냐, 이 개념으로 가자. 거기서 나중에 나온게 그거야, '최루탄 쏘지 마'" ('최루탄을 추방하자' 구호음)◇ 김현정> 전율이 오네요.
◆ 김정훈> 당시 시위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최루탄을 추방하자' 구호까지 들으셨죠. 이 운동을 시작한 게 여성단체들이라는 것이죠. 또 구속된 학생들의 가족들 모임으로 시작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활동도 두드러지는데,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각종 반독재 시위의 전면에서 폭력적 진압을 몸으로 막아내기도 했죠.
◇ 김현정> 그 당시에 반독재를 부르짖으면서 끌려간 수많은 대학생들, 고문받던 대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여성들 아닙니까? 그분들이 나서서 만든 게 ‘민가협’이고 많은 활동들을 했어요. 이것만 살펴봐도 여성들이 고문을 당하면서도 민주화 의지를 꺾지 않고, 치열한 거리 시위 현장까지도 나갔다는 게 증명이 되네요.
6.10항쟁을 앞에 두고 이화여대생들이 거침없이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제공)
◆ 김정훈> 걸출한 여성 운동가들도 등장했거든요. 그러면서 민주화운동 세력 내 여성의 지위는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 김현정>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걸 잘 모르고 있었던 거죠? 왜 제대로 기록이 안돼 있고, 지금도 ‘1987’하면 떠오르면 남성의 얼굴은 있는데 여성들은 없는 거죠?
◆ 김정훈> 우선, 민주화운동 세력 안에서도 남성중심 문화가 있었던 게 한 원인이었겠죠. 남성들이 그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고, 그것을 기록하는 데도 남성들의 시각이 깊이 반영됐다고 하는데요, 김희선 기념사업회장 ‧ 이미경 국제협력단 이사장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매일 같이 투쟁하러 나갔잖아. 6월 항쟁 때 하나도 안 빠지고. 가부장제 사고가 있는거야. 남자들한테 지금.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런 거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은가.""아직도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마이너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여성의 시각을 넣어서 보자' 이런 말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목소리가 완전 주류를 이루지는 못하잖아요."◇ 김현정> 여권이 전보다는 많이 성장했어요.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여성은 여전히 마이너, 80년대 90년대는 더 했고. 그 속에서 묻혀졌다는 거네요.
◆ 김정훈> 언론도 마찬가지였겠죠. 취재 과정에서 보니까 민주화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는 작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당시의 보도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의 경우도 이를 보도한 당시 기사는 거의 없다시피했고요. 오히려 대학 학보가 그 소식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는데요.
◇ 김현정> 대학생들이 만든 신문이요.
◆ 김정훈> 1984년 11월 19일자 '고대신문'의 경우 성추행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 소식을 자세히 알리면서도 다음과 같이 썼더라고요. "사회자가 물적·인적 증거제시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았지만 기자들은 질문을 기피했다."
◇ 김현정> 그러니까 ‘기자들 질문하세요’ 했는데, 기자들이 질문을 안 해요? 그만큼 관심이 없었다는 거예요? 충격적이네요. 기성 언론들에게 대학생들이 얼마나 서운했으면 이렇게 썼을까 싶은데. 이런 흐름 속에서 민주화를 위한 여성의 투쟁은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어느새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이렇게 볼 수 있네요.
◆ 김정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완수해야 할 숙제겠죠.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던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말로 들어보시죠.
[녹취: 유시춘 작가]"민주화 운동은 기록의 역사가 아니라 기록 소각의 역사예요. 메모지 한 장 가지고 있다가 징역을 사니까. 기록하는 작업이 중요하고. '(여성이)소수지만 확실히 있었다. 남성들 못지않은 투쟁력과 기획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것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일들은 앞으로의 과제라는 것을 이번 질문들이 던져주었다…"
◇ 김현정> 누가 더 영웅이냐, 이런 걸 재자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 역사를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잖아요. '영화 1987에 왜 여성은 없나', 사실은 소소한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듣다 보니 굉장히 큰 것들이 숨어있고 우리가 찾아내야 할 것들이 많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리고 김정훈 기자가 사진을 몇장 가지고 왔어요. 어디입니까? 여성들이 마스크 쓰고, 앞장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예요.
◆ 김정훈> 1980년대, 정확히 1986년 상황인데요. 이화여대생들이 거리에서, 시위대 전면에서 가열차게 투쟁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인데,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진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 김현정> 또 한 사진은 아주머니예요. 시위하는 모습, 이 귀한 사진들 올려놓겠습니다. 역사의 장면들 감상하시고요. 김정훈 기자, 가려졌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오늘 들춰줬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훅!뉴스, 김정훈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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