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정에 나선 석진우 목사. (사진=석진우 목사 제공)
"시각장애인이 자전거 일주를 한다고요?"
12년째 자전거 횡단에 나선 석진우 목사(50) 이야기다.
시각 장애 2급인 석 목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자전거로 전국을 누빈다.
결연한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는 그의 등에는 '4월은 장애인의 달. 장애인이 함께 하는 사회가 되길'이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붙는다.
그가 처음 자전거 일주를 시작한 이유다.
이달 20일인 '장애인의 날'을 알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 12년째 밟는 희망의 페달석 목사는 15살 때 급성 녹내장을 앓은 뒤부터 시력을 점차 잃어갔다.
눈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금식 기도를 하던 중 깨달음을 얻어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구의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시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전거가 떠올랐다고 한다.
물론 가족과 지인들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시력이 나쁜 그에게 위험천만한 일임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2006년 석 목사는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매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고 있다.
올해는 3일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해 동해안, 영덕, 부산, 제주도를 거친 뒤 마라도에서 여정을 마친다.
이번 여정의 가장 큰 목표 역시 사람들의 인식에 경종을 울리는 것. '장애는 숨기고 감춰야 하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한다.
또 조금이라도 후원을 받는다면 장애인들이 단기 선교를 갈 수 있게 힘을 보태거나 무연고 장애인들의 병원비나 생활비로 쓰려고 한다.
◇ 부상은 일쑤…지난해 미국에서는 사고 당해지난해 석 목사는 미국 자전거 횡단에 나섰다.
길도 험하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아 여느 때보다 험란한 여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가 났다. 부상이 꽤 심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시카고에서 LA로 향하던 중 트럭을 피하려다가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부딪힌 것이다.
석 목사는 여정을 완주하지 못한 채 포기해야 했다.
이후 가족들의 우려가 더욱 커졌다. 석 목사는 이번 여정 역시 어머니께는 비밀로 하고 떠난다고 했다.
석 목사는 "장애인은 가만히 있어도 절대 효자가 될 수 없다. 늘 부모님께 걱정을 드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나더러 장애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 역시 매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다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늘 좌절한다. 모든 장애인들이 이렇다"고 덧붙였다.
자전거 여정에 나선 석진우 목사(왼쪽). (사진=석진우 목사 제공)
◇ 조금씩 바뀌는 인식…"시력 다할 때까지 달릴 것"석 목사는 긴 여정 내내 지역 교회에 신세를 지거나 최대한 값싼 숙소를 찾아 눈을 붙인다고 한다.
식사도 최대한 저렴하고 간단하게 한 끼 때울 것으로 준비한다.
후원금을 최대한 아껴 자신이 돕고자 하는 장애인들에게 돌려주기 위함이다.
하지만 석 목사에게도 힘든 순간은 있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고 다칠 때면 울컥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생긴다.
석 목사는 그럴 때마다 10년 전 여정 중에 만난 식당 사장을 떠올린다고 했다.
비를 맞고 오들오들 떨던 가장 힘든 순간 찾았던 그 식당에서 계산을 하고 나서려는데 사장이 석 목사의 팔을 붙들고 말했다.
"목사님 고되시겠지만 이 도전 계속 이어가주세요"
눈물을 글썽이던 식당 사장은 자신의 딸도 장애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딸에게 식당 일만 맡긴 채 최대한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사장은 석 목사가 등에 붙이고 다니던 현수막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봤다고 털어놨다.
석 목사는 힘들 때면 그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자전거 페달 위에 발을 올린다.
앞으로도 그는 시력이 다할 때까지 자전거를 타며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 강서구에서 특수학교 설립을 놓고 장애인 부모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며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 그날이 올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