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박병대 전 대법관, 고영한 전 대법관 (사진=자료사진)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검찰이 어제(12월 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개인 비리 등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한 사례는 있었지만, 최고 법관인 대법관 출신에게 영장이 청구된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이어 그 윗선으로 향하는 검찰의 '수사 수순'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전직 대법관에게 영장이 청구되니 법원은 그야말로 침통한 분위깁니다.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이 어떤 분입니까. 온화한 성품과 합리적 일처리로 선후배 법관들에게 얼마나 신망이 두터웠습니까.
박 전 대법관의 경우, '야간고 고학생'이 대법관에 오른 말 그대로 입지전적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 전 대법관의 경우, 연수원 후배인 박 전 대법관보다 1년 뒤에 대법관에 임명 제청됐을 때 후배 법관들이 "대법관 임명제청이 너무 늦었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어쩌다가 후배 판사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하는 신세가 된 걸까요?
앞서 검찰 소환 때 "사심없이 일했다"던 박 전 대법관의 말은 사실과 부합하는 것일까요?
박병대 전 대법관은 지난 2014년,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법원행정처장을 맡게 됐고, 법원 안팎에서 줄곧 양 대법원장을 이을 차기 대법원장 후보 '0순위'로 꼽혔습니다.
오죽하면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일부 청문위원들이 우병우 전 수석의 카운터 파트너로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지목했을까요.
고영한 전 대법관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고 전 대법관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뽑았습니다. 이듬해엔 대법관으로 임명 제청했을 정도로 핵심중의 핵심 참모였단 말입니다.
대법관의 '대(大)'자에는 "크다, 높다, 훌륭하다"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통령(大統領), 대장(大將), 대인(大人)의 '대(大)'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고보니 "대인(大人)은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채근담의 얘기도 떠오릅니다. 남에게 부드럽되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라는 말입니다.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혹시나 "눈 한번 감으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데..", "나를 뽑아준 분을 어떻게 거스릴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다면 대법관의 '대(大)'자가 더욱 부끄럽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요즘 대법원 1층 법원전시관에는 '故이영구 판사 1주기 추모전'이 한창입니다. 유신독재를 비판한 교사에서 무죄를 선고해, 정권에 찍혀 좌천됐던 한 판사를 기리는 행사입니다.
故이영구 판사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지한 양심에 귀 기울인 소신을 판결로 나타냈기에 '오늘의 추모전'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추모전이 열리는 법원전시관 옆 복도에는 역대 대법관들의 사진이 연도별로 걸려 있습니다.
추모전에 가기위해 대법원을 찾은 한무리의 시민들이 그 사진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기들이 뭐라고, 무슨 뽀샵(포토샵)을 이렇게까지 시켰대?"
"천하의 나쁜X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구만"
순간 제 귀를 의심했고, 차라리 잘못 들은 소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