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딥이슈'는 연예 이슈를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 이면의 사회·문화 현상을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사진=방송 캡처)
성범죄, 경찰 유착, 마약 등 연예계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방송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문제 연예인들의 하차 조치는 물론이고, 이전에 출연한 프로그램들의 VOD에서 분량을 완전 삭제하는 작업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카카오톡 대화방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정준영·승리 등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 왔기에 더욱 문제가 됐다. 2016년 불법 촬영 및 유포 혐의를 받았던 정준영을 빠르게 복귀시켰던 KBS 2TV 간판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은 집중포화를 받고 결국 제작 중단에 이르렀다.
정준영이 '증거 불충분' 무혐의를 받은 당시,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준영을 그리워하는 멤버들 모습을 끊임없이 방송에 내보내 복귀를 성사시켰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실제 정준영은 '1박 2일' 복귀 이후 '유학파' '4차원 악동' 이미지를 확장시켜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해 왔다.
승리는 글로벌 OTT(Over The Top) 기업 넷플릭스와 손잡고 단독 예능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로 예능계의 '블루칩'이었다. 그가 한류를 이끄는 그룹 빅뱅의 멤버였던 사실도 중요했지만 방송 예능프로그램들이 승리를 '성공한 젊은 사업가'로 내세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승리는 대세 예능인이 되어 온갖 예능프로그램을 누볐다.
결국 정준영이나 승리 등 연예인들이 좋은 이미지와 함께 부와 권력을 쌓았던 데는 이 같은 방송 프로그램들의 이미지 구축이 주효하게 작용했던 셈이다.
그러나 사건이 터졌을 때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한 프로그램은 '1박 2일'이 유일했다. 나머지 프로그램들은 하차 소식을 알리거나 문제 연예인의 출연 부분을 삭제하는 식으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이런 방송가의 조치를 두고 매니지먼트 업계에서는 책임 회피식 꼬리자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연예 기획사 관계자는 "스타가 없다면 방송사와 매니지먼트는 갑을 관계다. 만약 스타가 있다고 해도 갑을 관계가 바뀌지는 않고 파트너십처럼 관계가 변하게 된다"면서 "이득도 같이 나누지만 손해도 같이 나누는 게 파트너다. 물론 법이 규정하는 선은 아니지만 방송사도 나름대로 도의적인 선에서 책임을 함께 지는 것이 맞다. 조치만 취하면 그때부터는 완벽하게 자유로워진다는 (방송사측)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방송국 놈들'이라는 농담이 있지 않느냐. 방송국은 이렇게 일이 터지면 누구도 제대로 사과하거나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없고 '언제 같이 일했냐'는 듯이 돌변해서 끊어내면 끝이다. 물론 방송사들이 연예인 사생활을 100% 알 수 없는 것은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플랫폼이 가져야 하는 책임과 도덕성을 대중에게 피력할 의무는 있다고 본다"고 방송사들의 책임감을 강조했다.
◇ 높은 이슈성과 시청률에 매몰…연예인 향한 검증은 실종
지금까지 방송가는 높은 이슈성으로 시청률만 담보된다면 해당 연예인이 실제로 문제가 있어도 눈 감고 기용하거나 수월하게 복귀시켜 왔다. 생계에 치명적인 손실이 없으니 이런 시스템 아래 연예인들은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범법 행위나 비도덕적 행위를 저질러 왔다는 것이다.
연예계에 오래 몸담아 온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방송가 검증 시스템 자체가 너무 허술하다. 옆 나라 중국이나 일본을 보면 성범죄, 마약, 음주운전처럼 중범죄는 영원히 방송 출연 금지"라며 "밥줄이 끊기는 거니까 연예인들도 감히 무서워서 그런 짓을 못한다. 우리는 복귀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데 연예인들이 무엇하러 자제를 하겠나. 이대로라면 더 끔찍한 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송국이 변별력을 가져야 이런 일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방송국은 문제 연예인을 다른 방송국에서 복귀시키면 너도 나도 다 출연시키는 분위기다. 그걸 본 젊은 연예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나. '나도 잘못하면 대충 뭉개다가 나가면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성범죄고 마약이고 경찰 유착이고 막장까지 온 셈"이라고 관련 분위기를 전했다.
방송사들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에게 앞장 서서 면죄부를 주거나 무분별한 띄워주기를 계속하는 이상, 똑같은 문제는 반복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연예인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 보다는 방송가를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 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방송사들은 지금 문제 연예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그들의 잘못을 잊어 버리도록 하는데 일조를 한다"면서 "캐스팅을 할 때 연예인의 과거 전력이라든가 행동 등을 검토하고 고려해야 하는데 시청률에 매몰돼 그걸 고민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 자르면 끝이 아니라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