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밝히 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재판관들이 입정하고 있다. (사진=박종민기자)
"상대적 불편요소를 제거하는 시류에 편승해 낙태를 합법화하면 우리조차 '고려장'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66년 만에 임신 중지가 범죄의 영역을 벗어났다. 선언적 의미는 물론이고 내용 면에서도 '재생산'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낙태죄를 계속 합헌으로 남겨두자는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지난 2012년 헌재의 낙태죄 합헌 근거보다 더 감정적이고 보수적인 색채를 띤다. 아직도 여성을 모성의 주체이자 출산의 도구로만 보는 '낙후한' 인식이 강해졌다는 비판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가 강렬한 소수의견을 통해 이번 결정의 부담감을 낮추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조·이 재판관이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해 판단한 의견서의 첫 문장은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로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위헌·합헌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은 낙태 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서술했다.
2012년에는 헌재가 낙태죄에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도 태아가 모체를 떠나서 독립할 수 있는 생명인지 여부를 법리적 관점에서 건조하게 서술한 것과 비교된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된 때부터 출생 시까지 태아는 기간의 구분 없이 내재적 인간의 가치를 지닌 생성 중인 생명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향유한다",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지 생존력·사고력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등이다.
조·이 재판관의 소수의견에도 2012년 헌재의 합헌 요지가 그대로 녹아있지만, 여기에 '설득적·단언적' 문장들이 더해지면서 전반적인 취지는 더 보수적으로 기울었다. 조·이 재판관은 "우리 헌법상 낙태할 권리는 어디에도 언급돼 있지 않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근본적으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낙태는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에 어긋나는 생명침해행위이다"라고 선언했다.
특히 "낙태수술 과정에서의 위험성과 여성 건강의 침해는 낙태 허용을 전제로 한 주장에 불과하므로 허용 여부 자체가 쟁점인 이 사건에서 고려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2012년 헌재가 합헌 요지 중 "낙태 금지로 인해 임신상태를 유지하고 출산해야 하는 임신한 여성의 기본권 보호 역시 국가의 의무이자 과제"라는 전제를 달아놓은 것보다도 후퇴한 설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헌재의 다수의견이 여성의 경력단절·자녀양육·재생산권 등 사회·경제적 사유를 낙태죄 비범죄화의 근거로 든 부분에 대해서는 안락사와 고려장까지 언급하며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조·이 재판관은 "사회·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 허용은 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이는 결국 편의에 따른 생명박탈권을 창설하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이어 "우리 세대가 상대적인 불편요소를 제거하는 시류와 사조에 편승해 낙태를 합법화한다면 훗날 우리조차 다음 세대의 불편요소로 전락해 안락사, 고려장 등의 이름으로 제거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안락사나 고려장 같은 단어는 물론이고 낙태는 여성의 편의, 임신은 불편요소 등으로 비유한 것은 이전 결정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2012년 결정문도 비슷한 취지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임부의 자기 결정권은 공익인 태아의 생명권과 비교가 어려운 사익'이라는 취지로 비교적 건조하게 표현했다.
헌법재판소의 한 직원은 "더 이상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거스를 수 없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도 아직 사회적으로 갈등이 큰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부 내에서도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고 말했다.
조·이 재판관의 서술이 단순히 전략적 선택일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새 여성의 권익이 크게 향상된 데 따라 반대편은 더욱 우경화되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담아냈다는 해석도 있다. 의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었을 때 낙태죄가 폐지되면 고려장도 허용될 수 있다. 표현은 아무리 비유적이더라도 과하지만, 반대 진영은 실제로 이보다 더 심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