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투톱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홍준표 전 대표가 본격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2‧27 전당대회 불출마 선언 이후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 운영에 집중했던 홍 전 대표는 지난 10일 공개석상에서 한국당을 '친박(친박근혜)정당'으로 규정하는 등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본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장외투쟁 이후 '아들 무(無)스펙' 거짓말과 '엉덩이춤' 해명 등으로 타격을 입은 황 대표와 '국회 정상화 협상' 추인 불발에 이어 박순자 국토위원장의 '버티기' 사태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나 원내대표가 주춤하는 사이 공격 타이밍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 홍준표 "黃은 정치초년생, 친박당으로 선거 어려워"…작심 비판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 (사진=윤창원 기자)
황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당내 사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온 홍 전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학생 특강에서 작심한 듯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국민 뇌리 속에 국정농단·탄핵 프레임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처럼 친박 1중대·2중대 갖고는 내년에 선거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당 지도부가) 보수 대통합을 한다고 하면서 친박들이나 만나고 다니는데 그게 보수 대통합이냐"고 말했다.
최근 친박계 인사들이 주요 당직에 임명되는 등 일련의 상황을 암시한 듯 한국당은 '친박 1중대', 우리공화당을 '친박 2중대'로 규정하면서 당 지도부를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특히 황 대표 관련 질문엔 답을 하지 않겠다며 발언을 아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황 대표는 '정치 초년생'인 반면 자신은 '24년 정치경력' 있다며 우회적으로 황 대표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문제는 황 대표를 향한 홍 전 대표의 비판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날에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1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사태 당시 국회 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는 당내 의원들 관련 대응책에 대해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홍 전 대표는 황 대표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자신의 SNS(페이스북)를 통해 "그것(선진화법 위반)을 공정한 수사문제로 바라보는 야당 지도부의 인식은 참으로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며 "의원들을 투쟁 전면에 내세우고 독려했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것이 지도자의 자세"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사태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당시 의원들에게 법적인 문제는 당이 나서서 끝까지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황 대표가 '공정한 수사'라고 다소 애매한 발언을 내놓자, 이를 정면으로 지적한 셈이다.
◇ 황교안·나경원 '투톱' 리더십 위기…'우리공화당' 변수도
(사진=윤창원 기자)
그동안 잠잠하던 홍 전 대표가 이처럼 지도부와 날을 세우며 행보를 넓히는 것을 두고, 당내 투톱 리더십의 약화가 홍 전 대표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당은 최근 북한어선 삼척항 입항 사태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 등 대여(對與) 공세에 활용할 수 있는 호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홍 전 대표 체제에서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단식투쟁까지 불사해 드루킹 특검을 얻어낸 것에 비하면 현 지도부의 리더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수통합을 천명한 황 대표는 최근 사무총장‧여의도연구원장 당직 인선 과정에서 친박계 편향 인사 논란에 휩싸이며 오히려 당을 분열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했다.
황 대표는 한선교 전 사무총장 후임으로 거론됐던 비박계 이진복 의원 대신 친박계 박맹우 의원을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여의도연구원장을 겸임한 김세연 의원에겐 택일(擇一)을 종용하다 무산된 바 있다.
나 원내대표 또한 20대 국회 후반기 상임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당내 의원들 사이 '교통정리'를 매끄럽게 해내지 못하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특히 국토위원장인 박순자 의원이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버티기' 모드에 돌입하자, 결국 지도부는 당 윤리위원회 회부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는 등 체면을 구겼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상임위원장을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윤리위 회부까지 가는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며 "지도부가 뭘 하길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이런 상황까지 오게 만드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며 지난달 18일 한국당을 탈당, '우리공화당'에 합류한 홍문종 의원이 행보도 악재로 작용한다. 우리공화당 공동대표를 맡은 홍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 현역 40명 이상이 추가 탈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의 옥중(獄中)정치를 암시했다.
한국당이 지금처럼 20% 안팎의 저조한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 친박계 공천 물갈이를 단행할 경우,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 우리공화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대규모 인적쇄신이 필요한 한국당 지도부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는 셈이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정치판에 처음 들어온 황 대표 입장에선 어차피 한번은 맞아야 할 위기"라며 "작은 틈새라도 보이면 가차 없이 공격이 들어오는 정치판의 생리를 익히면서 뚫고 나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