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1987년 1월 5차 사건 현장인 화성 황계리 현장을 경찰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화성연쇄살인사건에 전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도외시하는 흥미 본위 소비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장기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은 33년 만에 DNA가 일치하는 유력용의자가 특정되자 다시금 화두에 올랐다. 유력용의자는 '1994년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아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대표적인 과학수사 기법인 DNA 감정은 99.9% 이상의 정확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씨가 진범일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비록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았던 범인의 등장에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도에 비례해 이씨를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으로 주인공화하거나 엄연히 피해자와 유가족이 존재하는 사건 자체를 흥미 위주로 다루는 흐름도 만만치 않다.
영화 채널 OCN은 19일 편성된 '곡성'을 '살인의 추억'으로 변경했다가 빈축을 샀다. '살인의 추억'은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돼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OCN은 "공소시효가 지난 미제 사건의 사회적 심각성을 환기시키고, 실제적 진실 규명을 바라는 마음으로 편성을 결정했다"고 편성 이유를 밝혔지만 네티즌들은 지금까지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오락거리'나 '유흥거리'로 취급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한 네티즌(아이디: H_****)은 "가해자가 특정된 상황인 지금, 사건 유가족들에게 관련 영화를 방영해도 될 지에 대한 동의는 구했나"라며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은 미제 살인사건이 묻히지 않기를 바라는 의의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지 이미 가해자가 확실시 된 지금은 살인 자체에 대한 진지한 인식 없이 자칫 오락거리로 소비되는 것을 부추기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일침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미디어가 잔혹 범죄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도 상당하다. 범죄자일 뿐인 이들에게 지능범 운운하며 미화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연쇄살인사건은 창작물의 단골 소재이지만 이를 '피해자 존중' 없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표현해 논란을 빚기도 한다.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말 자체가 어폐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경찰 수사력의 문제로 잡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이라며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잭더리퍼' 사건과 같다. 만약 오늘날이었으면 '잭더리퍼'도 잡혔을 거다. 결국 대중이 법과 제도 위에 있는 연쇄살인범을 보길 원하고 여기에 미디어가 화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잔혹성과 의혹을 극대화시키는 보도 전략 역시 자칫 잘못하면 범죄 미화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 살인범을 인격이 배제된 '괴물', '미스터리' 등 초월적 존재로 취급하면 약자를 겨눈 그들의 악행은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다.
이 평론가는 "이춘재에 대해서도 지능적으로 묘사하는 보도들이 있더라. 그들은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그냥 약자를 혐오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여성이나 노인, 어린이들이 그 대상이고, 일종의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에 세워졌던 허수아비에는 범인을 향한 저주의 말이 쓰였다.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애끓는 아픔 앞에서 다시 한 번 사건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돌아 볼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