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들의 본회의 부의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정국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선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 국회선진화법 위반 수사까지 어느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그럼에도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투톱'의 전략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선거법의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저지할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공수처는 '반부패수사청'이라는 대안을 내놨지만 협상은 답보상태다. 무엇보다 패스트트랙 수사가 얽혀있어 당내 심리적인 불안감까지 퍼지고 있다.
12월 초 패스트트랙 정국이 투톱 리더십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기 만료를 앞둔 나 원내대표의 경우 '재신임'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의원들은 마음 급한데…'전략' 안갯속 지도부지난 12일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는 본회의 상정이 예상되는 '데이터3법'과 '유치원3법' 등이 논의 주제로 올랐다. 지도부 및 관련 상임위 의원들이 나와 법안의 내용과 문제점 등을 분석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이러한 발표로 의총 시간이 상당히 흐르자, 의원들 곳곳에서는 다급한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안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현안이 있다는 지적이다. 바로 '패스트트랙' 대응 전략이다.
의총에 참석한 한 재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급한데, 나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제대로 정리를 못하고 있다"며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패스트트랙 대응을 의제에 올려놓고 대안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선거법 안(案)은 지역구 270석에 비례대표 폐지다. 지난 3월 내놓은 당론에서 현재까지 변한 것은 없다. 지도부 한 핵심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의 목숨을 걸고 반대했는데, 연동형과 관련한 새로운 대안을 내는 순간 그림이 이상해진다"며 "앞으로 협상은 해나가야겠지만, 현재 당론에서 변경된 부분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은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연동형 50%)의 협상 한계를 살피며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대안을 구상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지역구 240석·비례 60석 및 250석·50석(연동형 50%)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한국당 내에서도 격한 충돌을 막기 위해 현실적인 타협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 중진의원은 "지역구 240석, 비례 60석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25%면 합의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연동형 25%는 사실상 거의 영향이 없다고 한다. 민주당과 우리 모두 명분을 챙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도부 한 관계자는 "50%는 안되고 25%는 덜 나쁘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다. 저쪽의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라고 경계했다.
지도부에선 민주당 2중대 정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연동형을 저지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데,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는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의원직 총사퇴 등 강공책이 거론되지만 실현 가능성과 '역풍'도 염려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여론전'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알려보자는 것이다. 선거법에 정통한 한 의원은 통화에서 "21대 총선을 연동형 비례로 치룬다면 정당 간 이합집산과 신당 출연 등 국민들이 정당에 대해 굉장히 혐오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지금 지도부가 해야할 일은 의원과 당원들에 대해 연동형 비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확산시키고, 문제점을 퍼트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 의총에서 연동형 비례제 부작용에 대한 안건은 의제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당 일각에선 "진작 했어야 할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반부패수사청 관철보다 장외 여론전…패스트트랙 수사로 '불안'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 역시 협상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교섭단체는 14일 검찰개혁 법안 3차 실무협상을 열었으나 공수처와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검경수사권조정 부분만 논의하는 선에서 그쳤다.
한국당의 공수처 대안은 일명 권성동안으로 불리는 '반부패수사청'이다. 공수처를 설치하지 말고 검찰의 부패수사 권한을 경찰로 넘겨 따로 청을 만들자는 것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보유한 민주당의 백혜련안이나, 수사권은 있으나 기소권은 없앤 바른미래당 권은희안과는 '공수처' 설치 여부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에 민주당은 권은희안에 협상 여지를 남기며, 권성동안에 선을 긋는 양상이다.
물론 아직 반부패수사청이 한국당의 당론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협상 흐름을 지켜보고 당론으로 정하겠다는 계산이다. 이와 함께 한국당은 지난 2일부터 전국을 다니며 '공수처법 저지 결의대회'를 이어가고 있다. 당내에선 '여론전'보다 원내 협상에 집중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한국당식 검찰개혁의 그림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라며 "중도층도 공감할 수 있는 개혁안을 제시하지 않고 공수처만 반대한다면, 자칫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패스트트랙 수사도 골칫거리다. 현재 한국당은 60명이 고발돼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1일 검찰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조사를 받았다.
이 둘을 제외한 다른 의원들은 당 방침에 따라 출석 요구에 한번도 응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도부는 "책임 지겠다"고 총대를 멨지만 황 대표는 정작 조사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나 원내대표는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에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KBS에 따르면 나 원내대표는 약 50쪽 분량의 의견서에서 당시 자당 의원들이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을 감금한 것이 아니라며 "빵을 나눠 먹고 마술쇼를 하는 등 화기애애했다", "젊고 건장한 채 의원이 감금 됐다는 건 채 의원을 너무 나약한 존재로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채 의원은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감금) 사건 당시 제 방 문고리를 잡고 있던 1명과 방에 있던 11명, 총 12명의 한국당 의원들을 힘으로 물리치지 못했으니 저는 나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정작 50쪽의 의견서 본문에는 (나 원내대표가) 자신의 책임을 밝힌 내용은 없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한국당 의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패스트트랙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당내 불안감은 퍼져 있는 상태다. 패스트트랙 본회의 부의는 오는 12월3일로 예정된 상태지만, 수사로 인한 '위축감'으로 저지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결국 패스트트랙 정국을 통해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의 리더십은 본격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황 대표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보수통합에 마땅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중도 확장과 인적 쇄신에 미진할 경우 패스트트랙 전략 부재와 함께 '책임론'이 가중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