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를 시청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7일 경자년(庚子年) 새해 신년사를 통해 북한에 던진 메시지는 북미 비핵화 대화와 별도로 남북관계 진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남과 북이 현시점에서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접경지역 협력 △남북 스포츠 교류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공동 등재 △6·15 20주년 공동행사와 김정은 위원장 답방 여건 마련 등 5가지 협력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지난 2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평화는 행동없이 오지 않는다", "남북관계에 있어 더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언급한 이후 이를 보다 구체화해 북한의 반응을 타진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들어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2017년까지 한반도에 드리웠던 전쟁의 먹구름이 물러가고 평화가 성큼 다가왔다"며 "그러나 지난 1년간 남북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고 언급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대화 무드 속에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9·19 평양 남북정상회담 등 '기적과 같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북미 대화 동력이 상실되고, 남북관계마저 후퇴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대화의 교착 속에서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북미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는 언급 역시 지난해 실기(失期)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청와대 내부에서는 2018년 빠른 남북관계 진전을 토대로, 이듬해인 2019년 북미관계 재설정과 관계 회복에 큰 희망을 걸면서 남북관계 개선 속도를 의도적으로 늦췄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대북 제재라는 한미 공통 지렛대에 보조를 맞출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큰 기대와 달리 '노딜'로 끝나고, 같은 해 6월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모인 '초유의 이벤트' 역시 비핵화 실무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하며서 정부는 번번이 남북협력 기회를 상실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북미대화가 본격화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다. 북미대화가 성공하면 남북협력의 문이 더 빠르게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토로한 것 역시 청와대 안보실의 현실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문 대통령이 제시한 첫 번째 키워드는 접경지역 협력이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생명공동체'"라며 "8000만 겨레의 공동 안전을 위해 접경지역 협력을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김정은 위원장도 같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남북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대형산불, 중국 어선들의 남북 공동 어로 싹쓸이 조업 등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한 셈이다.
실제로 북한도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생태환경 보호 및 자연재해 대응에 대한 언급을 내놨다.
그간 북한의 신년 메시지에 보이지 않았던 내용이라는 점에서 북한 역시 접경지역 남북 협력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청와대는 판단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두 번째 키워드는 도쿄올림픽 공동 입장을 포함한 남북 스포츠 교류 활성화다.
문 대통령은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는 남북이 한민족임을 세계에 과시하고 함께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남북 정상 간 합의사항이자, IOC에 공동유치 의사를 이미 전달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이기도 하다"고 환기시켰다.
또 "반드시 실현되도록 지속적인 스포츠 교류를 통해 힘을 모아가길 바란다"며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제1회 동아시아 역도 선수권대회'와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에 북한의 실력있는 선수들이 참가하길 기대하며 '도쿄올림픽' 공동입장과 단일팀을 위한 협의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협력 사업이다.
문 대통령은 "나는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갈 것"이라며 "지난 한 해 지켜지지 못한 합의에 대해 되돌아보고 국민들의 기대에 못미친 이유를 되짚어보며 한 걸음이든 반 걸음이든 끊임없이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독자 제재와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에 포함되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등은 당장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향후 비핵화 속도에 맞춰 언제든 제재 면제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북에 사전 준비를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 간 철도와 도로 연결 사업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남북이 함께 찾아낸다면 국제적인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남북 간의 관광 재개와 북한의 관광 활성화에도 큰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네번 째 키워드는 비무장지대 유네스코 공동 등재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는 남북한의 상호 안전을 제도와 현실로 보장하고 국제적인 지지를 받기 위해 제안한 것"이라며 "비무장지대는 생태와 역사를 비롯해 남북화해와 평화 등 엄청난 가치가 담긴 곳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등재는 우리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는 물론 지난해 말 한중일 정상회의, 한-아세안 특별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 전선인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와 유네스코 등재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북한에 제시한 마지막 키워드는 6·15 20주년 공동행사와 김정은 위원장 답방으로 요약된다.
문 대통령은 "올해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동행사를 비롯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남북 모두에게 광복 75주년이면서 한국전쟁 70주년인 만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공동행사를 제안한 셈이다.
특히 2018년 말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북미간 비핵화 대화에 연동되면서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와 별개로 남과 북이 김 위원장 답방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된다.
대북 제재라는 한미 공조도 중요하지만, 이에 매몰돼 정작 남북관계 후퇴라는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