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5월은 어린이 교통사고가 연중 가장 많은 달이다. 어린이날 등 기념일이 많고 날씨가 따뜻해 어린이들의 야외 활동이 많아지면서다. 3년 동안 5월에 발생한 만 12세 이하 교통사고는 3413건으로 전체의 10.59%에 달한다.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숨진 어린이는 5년 동안 31명. 스쿨존에서만 매년 평균 496건의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가 나온다. 지난해 9월엔 충남 아산의 스쿨존에서 9살 김민식 군이 차에 치여 숨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쿨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 가중처벌을 하도록 한 '민식이법'이 발의됐고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공포 후 한 달이 지났다. "경각심을 높여 어린이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와 "실수로 치어도 범죄자를 만드는 악법"이라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 '민식이법'으로 어린이 교통사고 잡나…우려와 기대 공존 '민식이법'으로 통칭하는 법안은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이다.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스쿨존에 신호등과 과속 단속 카메라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논란이 된 부분은 특가법 개정안에 신설된 처벌조항이다. 특가법 제5조의13은 안전운전 의무를 소홀히 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다치게 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시속 30km 이상 달리거나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지 않고 운전해 아이(13세 미만)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지금까지는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형법 제268조의 죄(업무상 과실·중과실 치사상)를 범한 경우,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적용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과실 비율, 부상 정도, 합의 여부 등에 따라 선고형이 달랐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아이를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에게 2년 미만 금고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가 상당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 교통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취지로 처벌 형량의 하한선을 정하고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처벌이 과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 글이 10개가 넘는다. 한 청원 글은 지난달 22일 총 35만 4857건의 동의를 얻고 마감했다. 어린이 교통사고의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담겨 있다.
이 같은 불안감을 반영해 주요 내비게이션 앱에는 스쿨존 우회 기능이 추가되고 있다. 운전자보험 가입도 늘었다. 4월 한 달 동안 주요 손해보험사 신규 계약만 45만 3천건에 달했다.
(사진=연합뉴스)
◇ 경찰 "단속 효과 있어…억울한 운전자 없도록 모니터링할 것"경찰은 민식이법 시행 이후 단속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청 조사 결과 어린이 부상 사고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58%가량 감소했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난 3월 25일부터 4월 24일까지 한 달 동안 스쿨존 내 속도위반 단속 건수는 12만 567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3만 6438건)보다 1만여건 이상 줄었다. 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어린이 부상사고는 21건으로 파악됐다.
다만 경찰은 코로나19 사태로 정식 개학이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단속 및 사고 추이를 지켜볼 방침이다.
경찰은 법 적용도 신중히 하겠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전날 기자 간담회에서 "21건, 어린이 23명 부상 사고에 대해서는 법리를 검토하면서 사건을 처리해나가고 있다"며 "△규정 속도(30km/h 이하) △어린이 안전 의무 2가지를 모두 준수했는지 여부에 따라 처벌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각 지방청에 사건과 관련한 면밀한 모니터링 지침을 내린 상태"라며 "어린이 교통사고를 자세히 조사하면서도, 혹시나 있을 억울한 운전자가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 "'어린이 안전' 위한 법…억울한 운전자 보호 방안 있어"민식이법에 반발하는 여론이 거세자 국회에서는 법안 수정 가능성이 포착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미래통합당 이명수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부작용 등을 살펴본 뒤 21대 국회에서 처벌과 관련한 개정안을 발의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률을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판례가 쌓일 때까지 지켜보자는 내부 기류도 읽힌다.
법률사무소 세웅 현승진 변호사는 "윤창호법과 사실상 처벌 수위가 같은데, 고의로 사고를 내거나 만취 운전을 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형량을 좀 더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식이법을 적용하는 요건이 '운전자 부주의나 중과실로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할 경우'로 명시돼 있는 만큼 처벌 수위를 낮추는 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변호사는 "무결한 법은 없다. 어린이 생명·안전과 비교했을 때 비례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스쿨존에서는 아이가 튀어나올 것을 염두에 두고 좌우를 보고 운전하고 제한속도를 준수하는 건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억울한 운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교통사고처리법 등 다른 법률을 의율하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하는 등 억울한 운전자를 보호하는 방안은 충분히 있다"며 "부상 사고의 경우 벌금 하한이 500만원이지만 작량감경(재판부 재량에 따른 형량 감경)하면 250만원으로 이전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처벌 강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스쿨존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강상욱 박사는 "사전예방도 중요한데 사후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다 보니 편법이 나오고 실질적인 효과도 떨어진다"며 "스쿨존 환경 특성, 차량 흐름 등을 고려해 법이 잘 실행될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독일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보행자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걸어갈 수 있도록 신호 체계를 설정하고, 보행 신호가 끝난 뒤 3~4초 간격을 두고 차량 신호를 보낸다. 우리나라 스쿨존 구역은 학교 정문 반경 300m인 데 반해 일본은 500m까지 돼 있고, 제한 속도도 20km/h다.
민식 군 부모는 지난달 27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세부사항은 국회에서 논의하고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법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해도 좋다"며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자는 것이었고, 아이들 지켜주자고 만들어진 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