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안나경 기자)
투기 수요를 근절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원칙 아래 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규제 정책이 나왔다.
투기과열지구 등 부동산 규제지역을 확대하면서 주택 관련 대출 문턱을 높여 '빚내서 집 사기'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보완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다만 이 같은 '실수요 목적 외 거래 자제령'에 따라 당분간 시장은 관망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 경기로, 충청으로…'빚내서 집 사기' 규제는 광역화정부는 지난 17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21번째 부동산대책으로 불리는 규제책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대해 규제 범위가 광역하면서 대출이 잔뜩 조여졌다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전문위원은 "시중 통화량이 사상 처음으로 3천조 원을 넘은 상황에서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리는 부동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종합대책"이라며 "강남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와 인천, 지방까지 규제지역 범위를 넓혀 전국적인 투기 수요 차단 조치를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6.17 부동산 대책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이번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는 서울 전역을 비롯해 전국 48개로, 조정대상지역은 69개로 늘어난다.
인천 연수‧남동‧서구와 성남 수정, 수원, 안양, 안산 단원, 구리, 군포, 의왕, 용인 수지‧기흥, 동탄2, 대전 동‧중‧서‧유성구는 오는 19일부터 신규 투기과열지구가 된다.
아울러 인천(강화‧옹진 제외)과 경기 지역 대부분(연천‧파주‧용인처인 등 제외), 대전, 청주 일부 지역(동 지역, 오창‧오송읍)은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된다.
이들 지역에 대한 대표적인 규제는 역시 '대출'이다. 투기과열지구에에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시세 9억 이하에는 40%, 그 초과분에는 20%, 15억 원 초과에는 아예 적용되지 않으며, 총부채상환비율(DTI)은 40%다. 조정대상지역에서는 LTV가 9억 이하에는 50%, 그 초과분에는 30%, DTI는 50%가 적용된다.
직방 함영진 빅데이터랩장은 "이 외에도 법인거래와 정비사업에 대한 투기적 가수요를 제한하는 대책에 정책효과를 집중시키고 있다"며 "대책 강도 수위가 높은 편이라 비규제지역의 국지적 과열 현상이 일부 진정되고 단기적으로는 거래시장이 소강상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 돈 없는데 빚도 못 내…길 잃은 무주택 실수요자하지만 대출 규제는 양면을 보인다. '빚내서 집 사기'를 틀어막는 동안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 기회 역시 함께 상실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보완책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국토부 하동수 주택정책관은 "미래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분들이 전세보증금을 얹어서 하는 갭투자가 많이 증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규제지역 내 집을 사는 경우 전입 의무를 강화하는 조치가 추가됐다.
이번 대책으로 인해 무주택자든 1주택자든 전체 규제지역 내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주택가격과 상관없이 6개월 내 전입의무가 부과되는 것이다.
무주택자의 경우 기존에는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에서 '시가 9억 원 초과' 주택 구입을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 '1년(조정대상지역은 2년) 내' 전입 의무만을 가졌다.
이번 대책으로 규제지역의 형태와 가격을 막론하고 전입을 준비할 기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또,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내에서는 시가 3억 원을 초가하는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전세대출을 즉시 회수하는 조치도 시작된다.
심지어 부동산거래신고법 시행령 등 개정을 거쳐 오는 9월부터는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 거래 신고 시 거래가액과 무관하게 자금조달계획서와 관련 증빙자료를 내야 한다.
당국은 이러한 갭투자 방지가 집값 진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무주택자 등에게도 이 같은 규제가 가해져 신규 진입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이은형 책임연구위원은 "대출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주택 구매자금을 충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번 규제를 기점으로 집 사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이번 정책에서 사실상 반서민적 성격이 일부 발견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진작에 집을 샀어야 한다는 후회감이나 상실감이 학습효과를 발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집값을 잡겠다는 입장이라면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사회에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장기적 관점의 정책이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와경제 송승현 대표 역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주택 구매력이 낮은 경우가 많을 텐데 6개월이란 기간은 짧다"며 "앞선 규제를 통해 가뜩이나 관련 심사나 절차가 늘어난 가운데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규제 범주 안에 무주택자와 1주택자를 집어 넣은 셈인데, 정책의 방향이 이들을 위한 게 맞는 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다만 하 정책관은 "국토부는 실수요자와 1주택 이상 보유자의 갭투자를 명확히 가르는 노력을 앞으로도 해나갈 것"이라며 "이번 대책이 끝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추가 대책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는 다소간 억제 효과는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함 랩장은 "풍선효과가 발생한 비규제지역의 국지적 과열 현상이 일부 진정되고 단기적으로 거래시장이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수요자의 관망세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저금리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는 데다 대규모 3차 추가경정예산과 3기신도시 토지보상자금 유입 등 부동자금이 많이 풀려 집값 조정에 대한 기대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