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한어총)가 국회의원 등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1년 반 동안 내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정식 수사를 시작도 못하고 종결했다.
경찰이 돈을 받은 의혹을 받는 의원 측을 수사해야 한다며 수차례 검찰에 '입건 지휘'를 요청했지만 검찰이 이를 반려했기 때문이다. 반면 검찰은 의원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한어총 김용희 전 회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경찰 "돈 줬다는 진술과 이메일 등 증거 확보" vs 검찰 "명백히 인정 안 돼"1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마포경찰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을 받는 제19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진 등 5명에 대한 내사를 지난달 말쯤 종결했다.
이들은 지난 2013년 김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약 46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경찰은 2018년 10월쯤 김 전 회장으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 왔다.
경찰 관계자는 "돈 받은 쪽을 특정하고 그동안 총 4차례 검찰에 입건 지휘를 요청했지만, 계속 반려돼 내사종결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통상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있을 경우 입건을 통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대공·선거·노동·집단행동·출입국·테러 및 이에 준하는 공안 관련 범죄는 경찰이 임의대로 수사를 시작할 수 없다.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검사에게 지휘를 건의하고 입건 여부에 대한 지휘를 받아야 한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도 여기 포함된다.
지난해 4월 한어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왜 경찰의 입건을 막았을까.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국회의원 측에 돈을 줬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내사한 경찰의 말은 다르다. '돈을 줬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던 중 김 전 회장이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들에게 약 46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정황을 포착했다.
김 전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이 중 약 3400만원은 계좌로, 약 1200만원은 현금 봉투로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경찰은 김 전 회장이 한어총 관계자에게 '돈 봉투를 준비하라'는 이메일 등을 보낸 사실도 파악했다.
◇돈 건넨 사람은 재판, 받은 사람은 불입건…"의혹 있으면 수사 통해 밝혀야"제대로 된 수사조차 받지 않은 의원들과 달리, 이들에게 돈을 건넸다고 주장한 김 전 회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관계자는 "계좌로 후원금을 보낸 부분에 대해서만 혐의를 인정해 기소했다"면서 "정치자금을 받는 입장에서는 이 돈이 불법인지 아닌지를 인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가 된 것은 '현금 1200만원이 전달됐느냐'인데, 이에 대한 입증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의원실에 대한 조사가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돈을 줬다는 사실이 확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데, 받은 사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진=자료사진)
◇경찰, 의원들 서면조사까지 했지만… '내사' 단계서 실체적 진실 파악 한계내사를 진행한 경찰은 김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 자금을 넘겨받은 의혹이 있는 의원실의 보좌진을 소환해 조사했다. 의원들에 대해서도 서면조사를 진행했지만, 이들은 모두 "현금 봉투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입건을 하고 정식 수사를 진행했다면 압수수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혹의 실체를 밝힐 수 있었지만, 내사 단계였기 때문에 당사자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체적 사실 관계가 뒷받침하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입건조차 하지 못한 것을 두고, 검찰이 수사 지휘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입증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사를 통해 (실체를) 밝혀야 하는 것이지, 입증이 안 됐으니 덮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검찰 '불입건 지휘' 견제 장치 없어…수사권 조정으로 해소될까
검찰 지휘 사건의 경우, 검찰의 의사 결정에 대해 경찰이 개입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도 문제다.
검찰이 피의자를 불기소하면 고소·고발인이 이에 대해 항고하거나 재수사를 요청하는 등 이를 보완할 수 있지만 검찰의 불입건 지휘는 손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면, 상황은 바뀐다.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기 전에는 검사가 수사 지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은 이르면 오는 8월 5일부터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