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교도소 전경(사진=최창민 기자)
교도소에서 손가락이 잘린 재소자의 진료소견서가 의사의 진찰 없이 작성돼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교도소측은 수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주치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다른 의사에게 진료소견서를 발급받아 서둘러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근 전남 장흥교도소를 출소한 김모(53)씨는 지난해 10월 24일 교도소 내 목공 작업장에서 대패 작업 중 회전 톱날에 왼쪽 네 번째 손가락 마디가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김씨는 교도소 인근 병원을 거쳐 광주의 한 병원으로 후송돼 긴급 봉합수술을 받았고 이튿날 다시 교도소 생활을 이어갔다.
김씨는 교도소로부터 지난해 12월 20일 작업 중 부상과 관련해 위로금 367만 원을 지급받았고 올해 6월 출소했다.
이후 김씨는 지급받은 위로금과 관련한 자료를 살펴보던 중 화들짝 놀랐다. 자신을 한 번도 진찰하지 않은 의사가 장해등급까지 적시된 진료소견서를 작성했고, 이를 근거로 위로금이 지급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CBS와 만나 "나를 수술하지 않은 의사가 마치 나를 본 것처럼 소견서를 교도소측에 써준 것"이라며 "장해등급까지 쓰여 있는데 손가락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진료소견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취재 결과 장흥교도소측은 애초 김씨를 치료한 광주의 병원에 진료소견서를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 주치의는 환자가 아직 치료 중이어서 최소 6개월이 지난 후 환자의 후유장해 상태를 보고 소견서를 작성할 수 있다며 이를 거절했다.
장흥의 한 병원에서 작성된 진료소견서(사진=최창민 기자)
그러자 장흥교도소측은 의료과장이자 장흥의 한 병원 의사인 A씨에게 진료소견서를 요청했고, 사고발생 20여 일 밖에 지나지 않아 실밥도 풀지 않은 지난해 11월 15일 진료소견서가 작성됐다.
더욱이 교도소측은 해당 의사에게 소견서에 김씨의 장해등급을 적어 넣어 줄 것을 요구했다.
장해등급은 환자의 치료 상태와 후유 정도까지 지켜본 뒤에 판단해야 하는데 A씨는 김씨를 면담조차 하지 않고 엑스레이 차트만 보고 교도소측의 요구에 따라 소견서에 장해등급을 적은 것이다.
교도소는 이렇게 작성된 소견서를 위로금 지급 공문에 첨부했고 법무부는 이 의사의 소견에 따른 장해등급을 인정해 김씨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6개월쯤 지나면 김씨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만큼, 후유장해 상태를 본 뒤 등급판정을 받아 절차에 따라 위로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교도소측이 서둘러 사건을 무마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의사 A씨는 "교도소측에서 장해등급을 넣은 진료소견서를 요구했고 산재상해진단 분류상 등급을 적어 넣었다"며 "엑스레이를 보고 환자 상태에 대한 소견을 의사의 양심에 따라 작성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해당 의사는 교도소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진료소견서를 써준 적이 있다고 밝혀 진찰 없는 소견서 발급 요구가 전국의 교도소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