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당정협의'가 열린 23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한의사협회가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배치다" 현수막을 들고 증원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당과 정부가 의사 부족 문제와 수도권·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10년 간 4천 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방안을 확정했는데 대한의사협회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정원 확대만이 답이 아니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시 8월 중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정부 "OECD 평균 미달에 지역불균형" vs 의협 "의료접근성 세계 최고"올해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지난 2006년 이래로 동결돼있다. 정부는 현재 절대적인 의사 숫자가 부족한데 이들이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역학조사관 등 특수 분야 의사 인력 확충의 필요성이 커져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내 인구 1천명 당 활동 의사 수는 2.4명으로 OECD 평균은 3.4명으로 차이가 난다. 지역별로도 서울은 3.1명이지만, 경북 1.4명, 세종 0.9명 등 격차가 크다. 또 정부는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눠 중증·필수 의료 인력 필요 현황을 추계해보니 적어도 3258명(전문의 2260명, 일반의 998명)의 의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23일 여당과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지역 의사 300명, 역학조사관·중증외상 등 특수 전문분야 50명, 의과학자 50명 등 매년 400명의 의대생을 추가 선발하기로 했다. 특히, 지역의사는 지역의 수요가 높지만 기피분야인 내과, 일반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만 전공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런데 의협은 단순히 OECD 평균치나 지역별 의사 숫자를 가지고 우리나라의 의사 숫자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냐고 반문한다.
의협 김대하 대변인은 "OECD 보건 통계만 보면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일본이나 미국, 프랑스도 인구 1천명 당 의사 수가 평균치보다 떨어진다"며 "대한민국에서 환자가 원하는 데 각 분야의 의사를 못 만나는 경우가 있는지 여쭙고 싶다"고 말했다.
유수의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우리나라는 원하면 언제든 병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의료 접근성이 우수한 편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9 보건복지통계' 연보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건수는 연간 16.9회에 달하고 평균 입원일수는 19.1일인데, 2017년 OECD 평균의 외래진료 횟수 7.1회, 입원일수 8.2일의 두배 이상을 웃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그럼에도 의사 확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김헌주 보건의료정책관은 "실제로 도시와 농촌의 의료 접근성의 차이가 국민 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통계가 있다"거나 "다른 전세계 국가들도 의사를 확충하고 있기 때문에 계획대로 의사가 증원되더라도 충분하다는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의 중간결과를 토대로 의대 정원을 500명 늘릴 경우 2065년에야 의사 수급이 적정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의협 "정부, 쉬운 길만 찾고 있어…정원 확대로 불균형·기피현상 해결 못해"또 의협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지역 불균형이 해소되거나 특정 과목 기피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 보고 있지 않다.
김대하 대변인은 "산부인과 같은 병원이 지방에 부족한 이유는 출산율이 낮아진 탓도 있지만 업무에 비해 보상이 적기 때문"이라며 "강제로 지역에 근무하는 인력을 충원해 해결한다는 것은 정부가 쉬운 길만 찾으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상기했듯 우리나라 국민들이 외래진료를 받는 건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반대로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은 OECD 평균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는데, 의협은 의료 수가가 턱없이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민간 병·의원에서는 수익을 내기 위해 '3분 진료'나 과잉진료와 같은 비정상적 행태가 나타나고 있는데, 의협은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 숫자만 늘어난다면 의료의 질이 더 떨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
김 대변인은 "환자는 스스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할지 판단할 수 없고,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시장에서는 어떤 행태도 벌어질 수 있다"며 "의사들이 그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과잉진료와 같은 안 좋은 행태가 더 늘어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지역의사제의 경우 의사들에게 해당 지역에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도록 했는데, 이 제도의 지속가능성 여부도 문제다. 10년 의무복무 기간에는 전공별로 4~5년인 수련기간도 포함되는데 실제 이들이 지역에서 전문의로 활동하는 기간은 5년 남짓이다.
수도권에 비해 지방은 의사로서의 전문성 계발이나 자녀 교육, 문화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지역의사의 경우 10년만 채우고 이탈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역 의사들에게 추가로 수가를 지급하고(지역가산 도입), 지역 내 네트워크를 활성화 해 자기계발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공개되지는 않아 의료계에 확신은 주지 못한 모양새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덕분에'로 응원해주더니 협의 없이 일방 통보" 불만또 의협은 이번 의대 정원 증원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어떠한 공식적 협의도 없었다는 데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복지부 김헌주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료계와 계속 대화를 시도하고 이뤄져왔다"고 말했지만, 의협은 "반대한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음에도 정부가 정식으로 의향을 묻거나 의견을 반영한 적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반박했다.
의협 김대하 대변인은 "코로나19 때 현장으로 뛰어갔던 의사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정책들이 강행된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의협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협의에 나선다면 응할 방침이지만, 의대 정원 확충 방안이 원안대로 추진된다면 대의원회 논의 결과에 따라 8월 중 총파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