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하천에 잠긴 대북전단 살포 풍선. (사진=연합뉴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 이후 한국 보수진영과 미국 워싱턴 조야 등지에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다만 이들이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면서도, 대북전단과 확성기 등이 초래할 수 있는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적잖다. 효율성 측면에서 봐도 이런 방식의 선전전 자체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단금지법 비난하면서도 '접경지역 주민 삶' 고려는?…군에서조차 전단·확성기 "효과 없다"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인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을 통해 북한으로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 인권 문제를 다루는 미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도 2021년 1월 새 회기가 시작되는 대로 대북전단금지법 등을 검토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크리스 스미스(공화·뉴저지) 하원의원, 제럴드 코널리(민주·버지니아) 하원의원, 마이클 매컬(공화·텍사스) 하원의원 등도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코널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거명하며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임진각에 설치된 대북전단 살포 금지 안내판.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한국 보수진영 등을 포함해 이들의 지적이 대부분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만 내세운다는 점이다. 접경지역 주민의 삶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은 모습이 엿보인다.
남북이 서로 전단과 확성기 방송으로 대치하던 과거 정부 시절,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유일한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 주민들은 "여름에도 창문을 열어 놓지 못할 정도"라며 어려움을 토로하기 일쑤였다.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접촉한, 당시 전방 지역에서 근무했던 현역·예비역 군인들 역시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우리와 북한의 확성기 방송을 현장에서 직접 들어 보면 양쪽에서 나오는 큰 소리가 서로 상쇄돼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도 않는다"며 "밤에는 낮보다 더 시끄럽게 들리는데 군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소음공해일 뿐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들의 모습.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무엇보다 전단을 날리면 2014년 10월 10일의 실제 사례처럼 북한이 맞받아 도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2010년대 중반 전방 지역에서 근무했던 한 예비역 부사관은 "당시 탈북민 단체들이 전단을 한 번 보내려 하면 군이 상황조치에 들어가는데,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민통선 바깥으로 대피해야 해 농사에 피해가 막심했다"고 말했다.
전단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동남풍이 부는 계절은 대개 봄이나 여름인데, 이 때는 한창 바쁜 농사철이기 때문이다. 설사 동남풍이 분다고 해도 북한 지역에 제대로 떨어지는 전단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법안 통과 당시 접경지역 시장·군수 협의회와 강화·웅진·김포·고양·파주·연천·철원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환영 입장을 밝힌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보(安保)라는 말의 뜻이 '편안히 보전함' 또는 '안전 보장'인 것을 생각하면 대북전단은 이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모습. (사진=연합뉴스)
◇선전전 측면에서 생각해도…전문가 "섣부른 대응이 곧 북한을 돕는 것"일각에서는 "선전으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어야 한다"며 대북전단금지법으로 이를 규제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하지만 선전전의 측면에서 생각해 봐도 별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북한의 손에 놀아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당시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총참모부 대변인 명의로 "전 전선에서 대남삐라(전단)살포에 유리한 지역(구역)들을 개방하고 우리 인민들의 대남삐라 살포투쟁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보장하며 빈틈없는 안전대책을 세울 것이다"고 밝혔다.
지난 6월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대남 확성기 모습.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며칠 뒤에는 인쇄된 대남전단의 사진까지 공개하며 이를 곧 살포하겠다고 또 한 번 예고했다. 이어 비무장지대 내 민경초소(GP)에 대남 확성기를 다시 설치했지만, 정작 실제로 방송을 재개하거나 전단을 직접 뿌리지는 않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비준이 필요하며, 며칠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다른 해석도 존재한다. 당시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 자체가 선전전이라는 이야기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우리를 성가시게 만들려는 일종의 심리전이다"며 "우리 언론 등이 지나치게 과장해서 보도해 여론이 악화되면 그게 바로 북한이 원하는 것"이라며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조 위원은 "중국 공산당 정치공작의 이른바 '3전 전략'은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이다"며 "조선중앙통신에 사진을 공개하고, 이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을 활용해 심리전과 여론전을 확산시키며, (2018년) 판문점 선언 위반을 걸고 넘어지는 것이 법률전이다. 그만큼 우리가 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명분을 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회의를 주재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2015년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국방정책연구'에 실린 논문 '군사분계선 일대 대북심리전의 적법성: 정전협정 및 남북합의서 위반 여부를 중심으로'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은 과하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는 1953년 정전협정 1조 1항의 내용을 생각해볼 때 살포 행위가 정전협정 위반의 소지를 배제하지 못한다고도 지적한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에서 법에 반대를 할 수 있지만, 전단과 확성기라는 '구식' 방법이 안보나 선전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만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통일부는 지난 15일 향후 북한이 대남전단을 향후 살포할 경우 대응 수단에 대해서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23조)에 따라 해당 합의서(판문점 선언 등)의 효력을 정지하면 전단 등 살포가 규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체제상 심리전, 여론전, 법률전 모두에서 앞설 수밖에 없는 한국이 오히려 대북전단금지법을 통해 셋 모두를 차분하게 갖춘 상태에서 대응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이유도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