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황진환 기자
법무부가 김학의 전 차관을 출국금지 조치한 직후 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며 대응 논리를 마련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차관 출금에 '문제가 없었다'는 법무부의 해명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이미 위법 소지를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금 조치하자마자 '절차 하자 법적 쟁점' 내부 보고
14일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신고서에 따르면,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A서기관은 2019년 3월 25일 '김학의 前차관 긴급출국금지 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 전 차관에게 출금 조치가 내려지고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다.
A서기관은 해당 보고서에서 예상되는 법적 쟁점들을 정리하며 검토의견을 달았다. 다뤄진 쟁점들은 △대검 진상조사단이 수사기관인지 △무혐의 처분된 사건번호로 이뤄진 긴급출금이 적법한지 △김 전 차관을 피의자로 볼 수 있는지 등이다.
출금의 근거가 된 긴급 출국금지 요청서에 수사권이 없어 출금 요청을 할 수 없는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그 요청 주체로 적시돼 있고, 무혐의 처분된 중앙지검 사건번호가 적혀있던 점 등을 놓고 법적 문제가 없는지 면밀하게 따져본 것이다. 법무부 안에서는 2년 전에 이미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출금 절차상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당시에도 위법 논란을 우려한 듯 보고서에는 대응 논리 마련에 고심한 흔적이 다분했다. 먼저 대검 진상조사단이 수사기관인지 여부에 A서기관은 '정식 수사기관으로 보기 어려우므로 단독명의로 출국금지는 불가능'이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다만 A서기관은 긴급출금을 요청한 대검 진상조사단 이모 검사가 자신을 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로 병기했고, 이후 승인 요청서에도 명의를 진상조사단에서 동부지검장으로 변경한 점을 들며 '적법한 조치라고 주장해볼 수 있다'고 논리를 구성했다.
이 검사가 과거 무혐의 처분된 김 전 차관의 사건번호를 긴급출금 요청서에 기재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A서기관은 '과거 무혐의가 확정된 사건에 기한 긴급출국금지는 어려울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대응 논리를 제시했다. 이 논리의 근거는 ①출입국공무원 입장에서 사건번호만 보고 종결 여부를 알 수 없고 ②승인 요청서에는 내사번호가 기재됐으며 ③당일 법무부 장관도 재수사 가능성을 내비쳤기에 ④사건이 종료됐다고 판단할 수 없었다로 요약된다.
이한형 기자
◇보고 작성한 법무부 서기관 "절차상 약점…법리논쟁 예상"이처럼 꼼꼼히 대응 논리를 준비하면서도 한 가지 쟁점에 대해서는 A서기관도 논란의 여지를 열어뒀다. 바로 김 전 차관을 피의자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현행법은 일반적인 출금과 달리 긴급출금의 경우 그 대상자를 피의자로 한정하고 있다.
A서기관은 '긴급출국금지의 대상은 범죄 피의자라고 다르게 규정한 법문의 취지를 고려할 때 피내사자에 대해서는 출국금지는 허용하되 긴급출금은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향후 이 부분의 법리논쟁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 예상됨'이라고 적었다.
논리 보완의 필요성도 병기한 A서기관은 해당 보고서로 추정되는 한글파일을 출입국 직원들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 공유하면서도 "정리해본다고 작성했는데 피내사자 부분은 그동안 실무상 어떻게 해왔는지 모르지만 약점은 약점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긴박하게 대응 논리 고심했지만…곳곳 허점 지적도당시 A서기관이 제시한 대응 논리 중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검사가 긴급출금 명의를 추후 동부지검장으로 변경했다며 이를 '적법 조치'의 근거로 내세웠지만, 동부지검장은 당시 공문에 직인을 찍지 않았다.
아울러 문제가 될 수 있는 무혐의 사건번호도 뒤늦게나마 내사번호로 바꿨다며 적법성을 주장했지만, 이 검사가 적은 해당 내사번호도 김 전 차관과는 상관없는 입찰방해 사건으로 드러났다. 대응 논리의 주요 근거들이 무너진 셈이다.
해당 보고서는 김 전 차관 출금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마저 적법 절차가 지켜졌는지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긴급하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김 전 차관 출금 사흘 전부터 그의 출국 기록을 수차례 조회한 또 다른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직원은 이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출금 당시) 긴급출국금지 요청서가 통상적인 양식이 아니었다. 사건번호는 중앙지검이 기재돼 있는데, 요청기관이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으로 돼 있고, 요청 검사는 동부지검 소속으로 보여서 전체적으로 이상했다"고 진술했다.
출금 직후 A서기관과 긴밀하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 이 직원은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 전산기록에 최초 출금 요청 내용 중 그 주체를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이규원 검사'로 변경하고, 사건번호도 최초 내용과 다른 '동부지검 내사1호'로 적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A서기관이 만든 보고서 속 대응 논리에 부합하는 취지로 기록 변경이 이뤄진 것이라는 평가 속, 실제 이 작업은 보고서 작성 무렵에 진행됐다고 한다.
A서기관은 현재 해외 출국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무부는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2일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전직 고위공무원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이 검사는) 수사기관에 해당하므로 내사 및 내사번호 부여, 긴급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위법 출금 의혹은 전날 대검의 재배당으로 수원지검 본청이 수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