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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이춘재 피해자들, 경찰 은폐 등 진상규명 요청

사건/사고

    '연쇄 살인'이춘재 피해자들, 경찰 은폐 등 진상규명 요청

    경찰, 실종 초등생 사체 찾고도 30년간 은닉
    고문으로 허위자백 후 1년뒤 암걸린 윤모군
    누명으로 20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씨까지
    '이춘재 사건' 수사 피해자들, 진실화해위 신청
    "반인권 수사, 용의자 몰려 자살도…진상규명해야"

    25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가 폭력으로 발생한 피해자·유가족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성여씨, 김모양 부친, 故윤모군 형. 서민선 기자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려 고문을 당했거나, 당시 경찰의 은폐로 30년 동안 실종된 딸을 찾지 못했던 피해자·유가족 등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25일 이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다산은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지만 당시 6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체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며 "14건에 이르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리고 온갖 가혹행위와 사회적 비난을 받으신 분들은 이 사건이 남긴 또 다른 피해자다. 그 뜻을 모아 진상규명에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는 "지난 윤성여씨 사건 재심에서 드러났듯 국내 초유의 심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수사 방식은 대단히 원시적이었고 인권침해적이었으며 비과학적이었다"며 "이런 과정에 드러난 이상 지난 30여년간 묻혔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이제 듣고 조사하고 정리해야 될 때가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누가 진범인지를 찾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이번에는 당시 수사과정이 정상적이고 적법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드러내서 피해자들을 위로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진상규명을 신청한 피해자·유가족들이 직접 참석해 목소리를 냈다.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경찰로부터 불법 체포·감금 당하고 범인으로 지목돼 20여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는 "잘못된 진실이 바로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최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1990년 당시 용의자로 구속돼 잠 안재우기, 구타, 전기고문 등 각종 가홍행위를 당해 허위자백을 했지만, 결국 진범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던 윤모군(당시 19세)의 형 윤모씨는 "작년 경찰청 정보공개를 해보니까 동생 조작해서 조사한 자료가 A4용지로 6박스 분량이더라"며 "잡혀 들어가서 이 정도 조사를 받았다는 걸로 보아 상당히 정신적인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윤씨는 "9차 사건이 일어난 뒤 동생이 TV에 나오면서 우리 가족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과 연락도 두절시키고 강제추행으로 먼저 엮어 놓은 다음에 살인 혐의까지 씌웠다"며 "우리 가족이 살면서 참 억울한 것도 많았지만, 그로 인해 너무 궁핍하게 사는 것도 참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당시 19세의 나이로 용의자로 몰렸던 윤군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배우 박해일이 연기한 캐릭터의 모티브가 됐다. 윤군은 풀려난 뒤 1년도 되지 않아 암에 걸렸고, 7년간의 병투병 끝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과정에서 국가 폭력으로 발생한 피해자·유가족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상규명 신청서를 제출하러 이동하고 있다. 서민선 기자

     

    이춘재가 뒤늦게 자백해 드러난 '1989년 초등생(김모양) 실종사건'의 부친도 진상규명 신청에 참여했다. 당시 경찰관은 실종 사건 수사과정에서 김양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사건 진범 검거에 부담감을 느껴 사체를 은닉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등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최근 공소시효 만료로 해당 경찰관은 기소되지 않았다.

    김양의 부친은 "30년 동안 실종이라고 생각해서 애기 엄마는 문도 잠그지 않고 열어놓고 살았다. 애기가 돌아온다고. 그런데 이번에 이춘재가 자백을 했는데 날짜를 따져보니까 5개월 만에 발견해서 30년 동안 경찰이 묻었던 것이더라"며 "경찰들이 은폐해서 묻어버리면 누가 잡나. 경찰이 은폐시킨 건 공소시효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다산의 박준영 변호사는 "8차 사건 재심을 통해 (윤성여씨가) 무죄판결을 받아 정의가 실현됐다고 할 수 있지만, 총 14건 중 13건은 아직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14건의 수사에서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올라갔고, 이 중 적지 않은 수가 반인권적 수사를 받은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윤성여씨 재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청장이 사과하는 걸로 끝내서 될 일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며 "'초등생 실종사건'의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윤씨는 재심 등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절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나머지 사건은 흐지부지 묻히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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