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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맨 된 피아니스트' 코로나가 더 아픈 그들

경인

    '쿠팡맨 된 피아니스트' 코로나가 더 아픈 그들

    코로나가 앗아간 희망, 연주 대신 배달 전쟁
    끼니 거르며 달리다 쩔뚝 신세, 최저임금에도 미달
    관악기 오카리나, 율동 많은 댄스 강사도 '생활고'
    임금손실 예술계 집중…"생계지원 체계 개선해야"

    아래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연합뉴스

     

    "피크타임에 콜(주문) 하나라도 더 잡으려면 화장실도 못 가요. 앉아서 피아노 건반만 치다가 들고 뛰는 일을 하려니 몸이 따라주질 않죠. 늦는다고 욕먹을 땐 어찌나 서럽던지…."

    서울 강북에서 10년간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온 최윤영(44·여·가명)씨.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11월 중순 "당분간 쉬자"는 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당분간'은 '마지막'이 됐다. 한때 대여섯 건씩 있었던 개인레슨도 대면 수업에 부담을 느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보내지 않으면서 모두 끊겼다.

    맞벌이에도 빠듯했던 터라 250만원 정도였던 월수입을 최씨는 어떻게든 채워야 했다. 채용공고를 보고 하루 네댓 건씩 지원서를 내봤지만, 음악경력뿐인 피아노 강사를 받아주는 일터는 없었다.

    그러던 중 간단한 회원가입과 안전교육만 받으면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인터넷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쿠팡맨'이 됐다.

    ◇배달 전쟁터 뛰어든 피아니스트의 비애

    '라이더'로 불리는 다른 배달 노동자들과 달리 최씨는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른다. 자신의 자가용으로 다니다보니 좁은 주택가에서는 배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주소를 착각해 엉뚱한 곳에 물건을 가져다 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배달일 자체가 미숙한 최씨가 한 달 꼬박 일 해 손에 쥔 돈은 80여만원에 그쳤다. 운수업을 하고 있는 남편도 코로나 영향으로 두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어, 최씨의 가계부는 매달 마이너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한 마음에 폭설로 얼어붙은 길을 뛰다 넘어져 무릎까지 다쳤지만, 절뚝거리면서도 배달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최씨의 경우, 학원에서 벌었던 수입에 대한 증빙이 안 돼 정부에서 지급하는 프리랜서 재난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최씨는 "배달일이 익숙하지 않아 기름값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며 "얼마 전에는 조카들 세뱃돈이라도 벌어보려고 반찬가게에서 일당 8만원짜리 전 부치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무릎이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삶과 자존감마저 무너져 서글프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학생들이 1인 1악기 프로그램으로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는 모습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이 같은 예체능 수업들은 운영에 제약을 받아왔다. 정규리씨 제공

     

    ◇코로나 사각지대…궁지에 몰린 '예체능 강사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사회는 실습 위주의 대면 활동을 통해 수입을 냈던 예체능 강사들에겐 더욱 가혹한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이 이달 초 발표한 '코로나19 확산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임금·소득분배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국내 잠재 임금손실률은 7.4%로 추산됐다.

    특히 예술·스포츠 분야는 15.1%가 감소해 숙박·음식(17.7%)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임금손실률을 보였다.

    학교 방과후 수업에서 1대 1일 오카리나 수업을 해온 정규리(42·여·가명)씨는 입으로 부는 관악기 수업이 전면 중단되면서 일을 잃었다.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면서 5개 학교와 맺었던 새 학기 강의계약도 모두 취소됐다.

    정씨는 "정규수업이 아니라 온라인 강의로 대체할 수도 없다"며 "반년 넘게 월세를 돌려막느라 보증금 500만원을 모두 소진해 걱정이 크다"며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를 한탄했다.

    예체능계 종사자들의 극심한 고용불안 문제는 실제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프리랜서 예술인의 고용피해액은 2천918억원으로 박물관·미술관의 관람수입 피해액을 모두 합친 금액(1천103억원)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서울 강남의 한 밸리댄스학원 강사인 박서연(46·여·가명)씨 역시 20여명에 달하던 수강생이 2~3명으로 줄면서 박씨 월급도 '반토막'이 났다.

    박씨는 "신체접촉과 호흡이 많다 보니 수강생들 대부분이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축제와 외국인 워크샵 등으로 부수입을 얻기도 했었는데 행사 자체가 없어지면서 그 마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예체능계 '직격타'…"한계 도달, 정책적 관심 높여야"

    전문가는 우선 이들의 정확한 피해 실태를 파악한 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으로 생계를 돕는 방식으로 지원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경제학 박사)는 "예체능계는 프리랜서들이 많아 임금노동자나 자영업자들보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힘들다"며 "이로 인해 정책적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지금까진 대출로 버텼지만 이젠 그마저도 한계에 도달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동안 꾸준히 생계유지를 돕는 체계를 마련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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