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2021.2.15. 김석균 전 해경 청장 등 1심 판결 후 세월호 유가족 기자회견 |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문재인 대통령님. 오늘 재판 어떻게 보셨습니까. 한 달 전에 나온 세월호 특수단 수사 결과 보셨죠. 수사와 진상규명 해달라는 우리에게 대통령님 이렇게 말했잖아요. 수사 결과 지켜보겠다고. 그 결과가 미흡하면 나서겠다고 약속해서 기다리게 하지 않았습니까. 특수단 수사결과가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왜 아무 말 없으십니까. 그리고 오늘 이 재판 결과는 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엉터리 수사와 재판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는데, 무엇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하신 겁니까?" |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들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지휘부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난 15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7년 만에 당시 구조 책임자들인 해경 지휘부에 대한 1심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결과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10명 전부 무죄입니다. 재판이 끝난 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절규처럼 이미 늦어버린 수사도 믿기 어렵고, 재판의 결과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판결을 선고한 재판장마저 "여러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 지지를 받든 비판을 받든 감수하겠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오늘 법정B컷에선 1심 재판부가 주목한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몇몇 장면들을 다시 되짚어보려 합니다. '책임자의 책임자'격인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당시 지휘부를 끝내 형사법정에서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러한 고위·특수공직자의 무책임과 무능, 안일함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SCENE#1 "구조 책임자들,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다"승객 447명, 승무원 29명 등 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갑자기 기울어진 것은 아침 8시48분경이었습니다. 최초 신고자는 승무원이 아닌 고(故) 최덕하 학생. 8시 52분에 119에 전화를 걸어 사고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신고를 전달받은 목포해양경찰서 이모 상황실장은 8시 57분에 진도 연안에서 경비임무를 수행 중이던 김경일 123 정장에게 출동을 지시했습니다.
비슷한 시각 8시 55분에 세월호 선원들도 제주항해상교통관제센터(이하 제주VTS)에 구조요청을 했습니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긴급한 신고였죠.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후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선수쪽 선저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모두 침몰한 가운데 구조대원들이 야간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목포해양경찰서에서 해양경찰청 본청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보고를 마친 시각이 9시 3분이었습니다. 각 청에서도 순차적으로 보고가 진행됐고 9시 10분에 김석균 청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구조본부가 꾸려졌습니다.
최초 신고 후 20분 안에 윗선 보고가 완료됐고 지휘체계도 마련한 셈이죠. 그런데 그 뒤부터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2021.2.15. 서울중앙지법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심 판결문 |
(가장 먼저 출동한) 123정은 9시 2분부터 초단파(VHF) 16번 채널로 세월호에 3차례 교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하자 교신 시도를 포기했습니다. 반면 진도VTS는 9시 6분부터 37분까지 VHF 67번 채널로 세월호와 교신이 되고 있었는데, 이를 각 구조본부나 현장 구조세력에게 제대로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진도VTS는 9시 25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세월호 선장이 승객들의 비상탈출 여부를 해경에 문의한다"고 알렸습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이미 배가 40~50도 기울어 배가 전복될 수 밖에 없다는 사정을 알 수 있었고 목포해양경찰서에서도 세월호 선장과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계속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비상탈출은) 선장이 결정할 사항이고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세월호와 교신이 되고 있던 진도VTS에 다른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하지도, 선장이 비상탈출 문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구조본부나 현장 구조세력에게 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
◇SCENE#2 청와대 보고는 완료, 현장 파악은 뒷전세월호와 교신이 잘 되지 않았더라도 방법은 있었습니다. 목포해양경찰서는 최덕하 학생 신고 이후 8시 54분부터 세월호 승객과 선원 등으로부터 다수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승객들이 선내 대기 중으로 비상탈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겁니다. 9시 4분에는 신고자 중 세월호 승무원 강모씨의 휴대전화번호를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연락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박종민 기자
해양경찰청 상황실은 세월호 선장과 교신이 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신고를 했던 선원이나 승객들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승무원 강씨는 8시 58분부터 "구명조끼를 입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했던 인물입니다. 만약 해경이 강씨 같은 신고자들에게 다시 연락해 비상탈출 안내만 했어도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2021.2.15. 서울중앙지법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심 판결문 |
9시 33분까지 청와대,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등 관련기관에 상황전파를 하던 상황이었음에도 정작 초계기, 헬기 등 현장출동 중인 항공 구조세력에게는 세월호의 사고 상황을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중앙·광역·지역구조본부 및 123정 등 구조세력 모두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거나 교신유지에 실패했습니다. 진도VTS와 세월호가 교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이를 알고도 교신 내용을 알아보거나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
위로, 더 위로 사건을 보고하고 누가 책임자인지 찾는데 분주했을 뿐 사고현장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겁니다. 최초 신고부터 40분이 지난 9시 30분쯤 구조세력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만 세월호 선체 상태나 내부 승객들의 상황, 비상탈출 준비 여부 등 아무것도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구조에 투입됐습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헬기는 '배 우측 45도로 기울어져 있고 지금 승객들은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해상 위에는 인원이 없고 선상 중간에 전부 다 있음'이라고 보고했습니다. 123정도 '사람이 하나도 안보이고 구명벌 투하한 것도 없고 아마 선박에 있나봅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승객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2월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그러나 해경 지휘부는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의 신속한 비상탈출 조치를 명하기는 커녕, 현장 사진과 영상자료 전송을 요구하는 등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지휘를 반복했습니다. 신고 1시간째인 9시 50분경 이미 4층 좌현 갑판까지 침수돼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 졌을 때도 김석균 청장은 '여객선에 올라가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라'는 엉뚱한 지시를 내렸습니다. "승객들이 뛰어내리도록 방송을 하라"는 비상탈출 지시가 이뤄진 것은 9시 59분이었습니다.
◇SCENE#3 "선장의 거짓말·교신불통·과다적재…책임 묻기 어려워"재판부는 "인명사고에 대한 역량이 부족하고 체계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경 지휘부를 구성한 피고인들에게 상급자로서의 관리 책임을 질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책임을 이유로 구체적인 구조 업무와 관련해 형사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전 청장 등 지휘부의 무책임과 무능을 처벌하기엔 △이준석 선장의 거짓말이나 △교신이 어려웠던 환경 △과도하게 적재된 짐과 수밀문 개방으로 빨라진 침수 등 특수한 사정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2021.2.15. 서울중앙지법 김석균 전 해경청장 등 1심 판결문 |
진도VTS와 교신하던 세월호 선장은 '승선원들에게 라이프자켓을 입고 대기하라고 했다'거나 '선원들도 브릿지에 모여 있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진도VTS는 물론 이러한 교신내용을 보고받은 서해지방해양경찰청도 세월호에서 어느 정도의 비상탈출 준비가 이뤄졌다고 오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월호 선장이 승객들에게 객실 내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계속하고 비상갑판 집결이나 해상투신 등 탈출 준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략)… 지휘부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조치를 취하지 않고 먼저 선박을 탈출하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교신을 통해 비상탈출 지시를 했더라도 선장과 선원들은 이를 묵살하거나 탈출방송을 했다고 계속 거짓말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데 피고인들의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유가족의 탄식 속에 선고를 마친 재판부는 "여러 측면에서 돌아봐야 하고 법적 평가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는 '모든 잘못을 형사법정에서 물을 수는 없다는 원칙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법원이 여전히 고위 책임자 처벌에 미온적이라거나 이준석 선장 한 명에게 잘못을 떠넘긴다고 비판할 겁니다.
다만 '판사도 무죄라는데 이제 그만 해라. 언제까지 세월호냐'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모든 시스템이 그렇듯 형사재판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유죄와 무죄의 심증이 50대 50이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하는 시스템이니까요. 무죄는 무결하다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죄 있음을 법의 언어로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이번 판결은 세월호 참사의 해결을 수사와 재판에 미뤄버린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봐야할 겁니다. 피해자들은 책임회피와 은폐에 급급했던 박근혜 정부 만큼이나 '촛불정부'를 자처하고도 임기 말이 되도록 제대로 수습을 못한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들이 지난 1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광장 가족협의회 노숙농성장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약속 이행·새로운 수사 촉구 기자회견' 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사법적 진상규명과 더불어 피해자들이 다시 국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도록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도 필요해 보입니다. 심판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설령 2심에서 유죄로 결과가 바뀌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온전한 위로가 되지 못할겁니다.
"대통령님. 오늘 재판 결과 어떻게 보셨습니까" 오래된 질문에 이제는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