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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사건 피해자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신상노출, 2차 가해"

사건/사고

    박원순 사건 피해자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신상노출, 2차 가해"

    17일 회견서 처음 모습 드러내…주최 측 전날부터 보안유지 '총력'
    회견 전날 신청받은 기자들만 출입…스탭들 녹음·촬영여부 확인
    곧 출간될 서적 때문 아냐…"분별력 있는 분들 제대로 평가할 것"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며 박 전 시장을 고소했던 피해자, 전직 비서 A씨는 박 전 시장이 숨진 지 251일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간 그는 지원단체의 입장문 대독 등 간접적인 형태로만 입장을 밝혀왔다.

    A씨가 피해사실을 밝힌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그를 둘러싼 '2차 가해'가 끊이지 않고 있는 만큼 행사 주최 측은 그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A씨를 지원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등은 기자회견 시작 전부터 당일 행사에 이르기까지 신상 노출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데 주안점을 뒀다.

    ◇행사 전날 '사전신청'자들만 입장…피해자 관련 녹음·촬영 '불가'

    A씨 지원단체들이 모인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는 사람들'은 17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행사를 열었다. 행사는 전날 오후 4시 17분쯤 메일을 통해 기자들에게 공지됐다.

    주최 측은 "진행 방식과 신청 방법을 꼭 읽어보시고 신청해 달라"며 이날 오후 8시까지 약 3시간 반 동안만 온라인으로 참석 신청을 받았다. 이들은 "피해자가 말하는 때에는 촬영, 녹음이 전면 불가하다"며 "입장하는 분들은 이에 대해 서약서를 작성하고 입장해야 하며, 현장에서 촬영 및 녹음 여부를 확인하는 스태프들이 함께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회견 장소는 당일 아침 8시 8분경에서야 신청자들에 한해 문자로 발송됐다. 행사 장소에서도 전날 참여를 신청한 기자들만 '피해자 관련 촬영·녹음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서 휴대전화 카메라렌즈를 가릴 수 있는 포스트잇을 건넨 스태프들은 행사장을 오가며 서약내용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를 내내 지켜봤다.

    피해자를 더 확실히 엄호하기 위해 현장에서 진행방식이 일부 바뀌기도 했다.

    당초 A씨는 '더 늦기 전에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행사 초반에 직접 낭독하고 마지막 발언을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최 측이 사진·영상을 촬영하는 기자들의 퇴장 타이밍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행사 마무리 즈음 등장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서혜진 고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변호인(오른쪽)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피해자가 한번 입장하고 나면, 일부러 그를 제외한 채 나머지 인원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A씨의 첫 발언문은 한국여성의전화 송란희 상임대표가 대독하는 것으로 대체됐다.

    이후 A씨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 자신을 대리한 공동변호인단의 서혜진 변호사,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등 7명의 발언이 모두 끝난 뒤에야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회견 진행배경 놓고 '설왕설래'…"소모적 논쟁 이제 중단해달라"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정확히 3주 남은 가운데 회견 소식이 전해지자 A씨가 현재 상황에서 직접 입장을 밝히려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일각에서는 오는 19일 출간되는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50인의 증언으로 새롭게 밝히는 박원순 사건의 진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해당 서적은 서울시청을 출입했던 한 기자가 저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A씨는 발간 소식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A씨는 "저는 아직 그 책을 접하지 못했지만, 그 책에 대한 몇몇 이야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다"며 "들은 바에 따르면, 제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인정받은 사실들에 대해서 오히려 부정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러면서 "저는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인정받은 제 피해사실과 개인이 저서에 쓴 주장은 힘이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분별력 있는 분들께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시선으로 그 책을 평가하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A씨는 사건을 직권조사한 인권위가 올 초 박 전 시장의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발표한 만큼 이제는 피해여부에 대한 진실 공방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아직까지 피해사실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서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고인의 방어권 포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다"고 괴로움을 토로했다. 또한 '피해사실을 인정받기까지 험난했던 과정과 피해사실 전부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 이 상황을 악용해 저를 비난하는 공격들'이 이어졌다고 돌이키기도 했다.

    또 인권위 조사결과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한) 지난해 7월 이후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될 거란 모두의 기대와 달리 실체적 진실을 밝혀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조사에 임했고, 일부 참고인들의 진술 등 정황에 비춰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저는 이번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잊혀져 가는 이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며 "저라는 존재와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전임 시장의 업적에 대해 박수 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낀다.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며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받는다"고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가장 괴로운 것은 2차 가해…구체적 제재방안 마련해 달라"

    A씨는 입장문을 읽는 동안 때때로 감정이 북받쳐 울먹이기도 했지만 대체로 담담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7월 1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통로 게시판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관련,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내용의 메모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A씨는 '피해사실을 밝힌 이후 많은 일이 있었는데 무엇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2차 가해'를 꼽았다. A씨는 "첫 번째로 (가장 힘든 것은) 제 신상노출에 관한 내용"이라며 "저는 수사기관에서 가명으로 조사를 받았고 저의 신상이 노출될 염려가 전혀 없었음에도 (박 전 시장) 지지자들의 잔인한 2차 가해 속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저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 2차 가해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제가 일터에서 소명을 다해 열심히 일했던 순간들이 (마치) 저의 피해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이유로 사용되는 것이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조직적 2차 가해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제도적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저는 사상 초유의 2차 가해에 직면해 있다. 제도적으로는 2차 가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며 "그에 대한 제재 또한 구체적이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저의 가족들은 저에 대한 근거없는 (게시물), 저의 신상에 관한 게시물들을 직접 신고해 지워나가고 있다"며 "그런 게시물들을 (직접) 보는 것뿐만 아니라 지워나가느라 너무도 끔찍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질의응답까지 약 1시간 20분 만에 행사가 마무리된 이후 A씨는 주최 측의 배려로 먼저 자리를 떠났다. 그가 발언을 마치는 순간, 장내에는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회견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을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따로 반론이나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 없다"며 "인권위 권고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계획이며, 피해자가 하루 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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