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수도권 특별방역대책이 시행된 지난 17일 오전 서울 구로역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에서 검체 검사를 받으려는 시민 및 외국인 등이 대기하고 있다. 서울시는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 이행 행정명령을 내렸고, 경기도는 사전 진단검사를 통해 음성으로 확인된 외국인 근로자만 채용하기로 했다. 박종민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의무화한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명령을 놓고 "이주민을 분리, 구별하는 정책은 인종차별 인식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는 입장을 내놨다.
19일 인권위는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을 이틀 앞두고 최영애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 8일 향후 2주간 외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고용 사업주들에 대해 미등록 여부를 불문하고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으라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서울시 또한 지난 17일부터 이달 말일까지 같은 취지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최 위원장은 "행정명령에 대한 법적 근거는 '감염병 의심자'에 대해 진단검사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감염병예방법 제42조 제2항 제3호로, 감염병 의심자를 (확진자) 접촉, 관리지역 체류·경유, 병원체 노출 등으로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으로만 정의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외국인 노동자만을 '검사 대상자'로 분류하는 정책이 관련법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인권위는 지자체들이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내국인들의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짚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최 위원장은 "지난 2018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우리나라에 대해 '유효한 허가 없이 당사국에 거주하는 이주민을 지칭하기 위해 공식 문서에서 사용되는 불법 체류자와 같은 비하적 용어들은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악화시킨다'며 사용 철폐를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지자체 행정명령서는 '불법고용 외국인', '불법체류 외국인' 등을 반복해 명시했다"며 "이로 인해 '외국인'은 '코로나19 진단검사가 필요한 감염병의심자' 및 '불법을 행한 범죄자'로 연관돼 인식되면서 관련뉴스에 외국인 혐오댓글이 달리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거주 외국인들은 이같은 행정명령이 '혐오와 인종차별로 느껴진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 위원장은 "이에 인권위는 신속하게 차별과 침해 여부를 판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의 대유행) 속에서 인종차별이 혐오범죄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도 우려했다.
최 위원장은 "미국, 유럽 등에서 아시아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온라인 상 혐오댓글, 언어폭력, 서비스 거부, 침을 뱉는 등의 모욕적 행위, 폭행 등 범죄행위가 급증하고 있는 사실이 각종 통계와 사례연구를 통해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에도 뉴욕에서 한 남성이 뚜렷한 이유가 관측되지 않는 상황에서 쇼핑가를 방문한 83세 한국계 여성에게 침을 뱉고 주먹질을 해 피해자가 기절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담당 지방검사는 인종에 기반한 혐오범죄 혐의를 두면서 '혐오범죄는 모두에게 영향을 주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인종차별이 동기로 의심되는 증오범죄는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오후 5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마사지숍에서는 총격 사건이 일어나 한국계 여성 4명 등 총 8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 애틀랜타 연쇄 총격사건 현장에 놓인 조화. 연합뉴스
용의자 로버트 에런 롱(21)은 경찰 조사에서 인종적 동기가 아닌 '성 중독'이 범행 이유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지 경찰은 증오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 위원장은 "소외되고 취약한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전 세계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고, 우리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사라져야 한다는 인식이 함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난해 4월 'COVID-19와 인권, 유엔 사무총장 정책 보고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차별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차별적으로 발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포용적이고 공평하면서 보편적인 대응을 전세계에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인권위가 실시한 '코로나19와 이주민 인권상황 모니터링'에서도 공적마스크·재난지원금 등의 정책에서 이주민이란 이유로 배제되거나,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코로나19 관련 정보가 전달되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최 위원장은 "이주민을 배제하거나 분리하는 정책은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을 야기할 수 있으며, 사회통합 및 연대와 신뢰의 기반을 흔들고 인종에 기반한 혐오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이주민을 의사소통 통로에 적극 포함시켜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이주민 대상 정책에 있어 차별적 관념과 태도가 생산되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한편, 3월 21일인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은 지난 1966년 유엔에 의해 지정됐다.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통행법'(Pass Law) 등 대대적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한 것이 발단이 됐다. 1960년 3월 21일 해당 법안에 반대하며 평화적 집회를 하던 시민 69명이 경찰의 발포로 희생된 것이다. 6년 뒤 유엔은 이 '샤프빌 학살 사건'을 기리며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을 철폐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