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75세 이상 고령층에 접종될 미국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25만명분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에 도착해 의료진이 백신이 담겨있는 상자를 개봉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며 전 세계가 백신 도입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데, 정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예방접종 계획에 따른 원만한 접종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 세계 백신 수급 불안, 국내 모더나 등 2분기 도입 일정 미정현재 백신을 두고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EU)은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올해 1분기 1억2천만회 분을 공급받기로 했지만, 실제 공급량은 3천만회 분에 불과했다. 2분기 공급량도 당초 1억 8천만회 분이 아닌 7천만회 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EU는 지난 1월 30일부터 역내에서 생산된 백신이 수출될 때 회원국 승인을 받도록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5일에는 유럽보다 접종비율이 높은 국가에 백신 수출규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비슷한 시기 전 세계 백신 생산량의 60% 이상을 맡고 있는 인도에서도 자국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수출을 일시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백신 접종 대상 확대로 자국 내 백신 수요가 급증할 것을 우려한 조치다.
또 현재 미국은 전 세계 백신의 27%를 생산하고 있는데, 해외 수출은 전무하다. 미국에서는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등 1억 3천만회분의 백신이 생산됐지만, 미국 밖으로는 전혀 반출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추진단 정은경 단장은 29일 "전 세계적으로 백신 수급이 불안정하고 부족한 상황인 것이 맞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는 31일 국내 운송이 시작될 예정이었던 코백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9만회 분은 도입 일정이 4월 셋째주로 늦춰지고, 물량도 43만 2천회 분으로 축소됐다. 코백스가 백신 수급 상황을 고려해 모든 참여국에게 상반기 중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일정과 물량을 조정한 것이다.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 준비 한창. 연합뉴스
그나마 아스트라제네카는 국내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에서 대부분의 물량이 생산되기 때문에 피해가 최소화 될 전망이지만, 2분기 도입 예정인 얀센, 노바벡스, 모더나 등의 백신은 개략적인 공급 일정도 나오지 않았다.
정 단장은 "얀센, 노바백스, 모더나에 대해서는 아직 회사에서 백신에 대한 공급 일정 등을 확정 짓지 못했다"며 "긴 기간을 두고 미리미리 결정되는 사항이 아니라 굉장히 다급하게 공급일정들이 그때그때 변경되기 때문에 계속 협상해서 확보하는 노력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일단 정부는 노바백스 백신의 국내 생산에 필요한 원료 및 모더나, 얀센 백신 공급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과 다각도로 협상에 나선 상태다. 특히, 정부는 원활한 협상을 위해 우리나라의 '최소 잔여형 주사기(LDS, 접종 뒤 주사기에 남는 백신 잔량을 최소화해 백신 1병당 접종 인원을 늘릴 수 있는 주사기)'를 미국에 공급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단장은 관련 질문에 "노바백스 같은 경우 국내에서 생산을 해야 되기 때문에 원부자재를 수입해야 된다"며 "해당 국가(미국)에 많은 지원을 요청하고 필요한 협상에 대한 내용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도의 답변으로 갈음하겠다"고 답했다.
◇아슬아슬한 화이자 도입 물량 "계획 세심하게 짜서 2회 접종 실시"더 큰 문제는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시작되는 75세 이상 화이자 백신 예방접종도 불안하다는 데 있다.
2분기 화이자 백신으로 예방접종을 받게 되는 인원은 75세 이상 어르신 약 351만명과 노인시설의 입소·종사자 15만 5천여 명이다.
이들의 접종을 위해 지난 24일 50만회 분이 국내로 들어왔고, 31일 50만회 분이 추가로 도착할 예정이다. 현재 정부는 2분기에 화이자 백신 600만회 분을 도입할 계획인데, 4월에는 100만회 분, 5월에는 175만회 분이 매주 나뉘어 들어오고, 나머지 물량의 도입은 그 이후로 밀릴 전망이다.
현재 75세 이상 어르신 중 거동이 불편한 경우 화이자 백신을 맞기 위해 예방접종센터를 방문할 수는 없고, 일부는 접종 자체를 거부하는 등 접종률이 80% 안팎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일정대로 백신이 도입 된다면 1차 접종까지는 무리가 없을 수도 있다.
만 75세 이상 고령층에 접종되는 미국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25만명분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에 도착. 담당자들이 초저온 냉동고에 보관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다만 화이자 백신이 3주 간격으로 2차 접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2차 접종 시기에 맞춘 예방접종이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4월 초 접종자가 4월 말 2차 접종 시기가 됐을 때, 그 때까지 확보된 물량을 아직 1차 접종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써야 할지, 2차 접종자에게 써야할 지 선택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화이자 백신 도입이 예정보다 지체된다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정은경 단장은 "1차 접종을 최대화할 수 있게끔 접종에 대한 계획을 세심하게 짜서 백신의 재고를 쌓아 놓는다거나 (접종 주기가) 너무 길게 되는 일들이 생기지 않게 수급과 확보에 대한 노력을 최대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백신 수급 상황에 맞춰 일부 고령층의 1차 접종 일정을 앞당기거나 뒤로 미루는 등 계획을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또 정 단장은 "2차 접종 물량은 가능하면 그 주기를 지켜서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접종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영국처럼 '아예 2차 접종을 안 하겠다, 1차 접종만을 하겠다'는 전략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