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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제주4‧3 아동학살…생존자 상처 외면도



제주

    어둠 속 제주4‧3 아동학살…생존자 상처 외면도

    [제주4‧3, 짓밟힌 꽃망울⑧]
    제대로 된 진상조사 이뤄진 적 없어
    후유장애로 고생해도…희생자 인정 안 돼
    "비극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해야"

    제주4‧3 당시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만 1만4천여 명. 희생자 10명 중 2명은 아이들이었다. 수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70년 넘게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CBS는 그동안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혔던 이들의 비극을 조명한다. 7일은 마지막 순서로 남겨진 과제를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젖먹이‧임산부도 죽였다…제주4‧3 아동학살 '참극'
    ②제주4‧3 학살터에서 살아남은 아이들
    ③"마구 때리고 고문"…소녀에게 제주4·3은 '악몽'이었다
    ④제주4‧3 '고난'의 피난길…여린 아이들은 죽어나갔다
    ⑤사회적 낙인 속 고통…제주4·3 학살 고아의 70년 恨
    ⑥불법 재판으로 옥살이…소년들 삶 앗아간 제주4‧3
    ⑦제주4‧3 짓밟힌 꽃망울, 다시 피어오르다
    ⑧어둠 속 제주4‧3 아동학살…생존자 상처 외면도
    (끝)


    제주4·3 당시 부모와 함께 산간으로 피신했던 아동들. 4·3아카이브 제공

     

    '아동은 엄연히 어떠한 위험 앞에서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1924년 9월 국제연맹에서 채택한 '아동 권리에 관한 제네바선언'의 내용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아동에게 미친 참상에 대한 깊은 반성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미군정 하에 있던 4‧3 당시 이러한 약속은 묵살됐다. 군‧경의 총부리 앞에서 여린 아이들은 속수무책으로 희생됐다. 특히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정확한 희생자 수 몰라…"전수조사 필요"

    4‧3 시기 아동 학살은 말로는 그 참혹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낳았는지,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조사된 적이 없다.

    지난 2000년 4‧3특별법이 제정되고, 그 이후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한 차례 이뤄졌다. 또 4‧3평화재단에서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아동의 희생에 주목한 피해 실태 조사는 없었다.

    제주4·3평화공원 내 각명비. 고상현 기자

     


    희생자 수도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현재 제주도에 신고된 전체 희생자(1만4533명) 중 아동‧청소년 희생자는 모두 3353명(23%)이다. 하지만 이를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이는 정부 진상조사에서 추정한 전체 인명 피해(2만5천 명~3만 명)보다 적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은 가문이 멸족되거나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미신고된 경우가 많다. 전수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은 "4‧3 당시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는 아동의 죽음은 그야말로 4‧3이 이념을 떠나 무차별 학살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증거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이들의 비극에 대해 주목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추가 진상 조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지금부터라도 학살 규모와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제주4·3연구소 허영선 소장. 고상현 기자

     


    ◇후유장애로 고생하는데…희생자 인정 안 돼

    학살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상처도 외면받고 있다. 군‧경으로부터 총상을 입거나 고문에 시달렸어도,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4‧3 당시 12살 소녀였던 정순희 할머니(86)는 경찰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이지만, 4‧3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4‧3 당시 피해로 후유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사 소견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피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순희 할머니(86)가 4·3 당시 고문당했던 일을 증언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

     


    정 할머니는 "4‧3 후유장애로 신청하라고 해서 병원 진단서를 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70년 전 사건 진단서를 어떻게 작성해주느냐고 한다. 내 몸은 죽어지는데, 후유장애로 인정도 못 받고 한이 맺힌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인정 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지난 2007년 강양자 할머니(80) 등 13명이 후유장애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패소했다. 이들은 당시 패소한 재판 결과 때문에 다시 후유장애로 신청해도 구제받지 못하고 있다.

    4‧3 당시 7살의 나이에 척추를 크게 다쳐 성장이 멈춰버린 강양자 할머니는 "4‧3으로 장애를 얻은 것이 분명한데, 불인정이다 뭐다 하니깐 정말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4‧3생존희생자후유장애인협회 고효양 사무국장은 "4‧3의 특수성을 행정에서 고려하지 못해 후유장애로 고생하는데도 희생자에서 배제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4월 4·3증언본풀이마당에서 강양자 할머니(80)가 증언하고 있다. 강 할머니는 4‧3 당시 7살의 나이에 척추를 크게 다쳐 성장이 멈췄다. 고상현 기자

     


    ◇"아동학살 비극 되풀이되지 않도록…기억해야"

    4‧3 당시 누군가의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했던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 나갔다. 이념도 몰랐고, 자신의 몸조차 지킬 능력이 안 됐던 아이들은 4‧3 광풍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희생됐다.

    우리가 7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아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허영선 소장은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크다. 그런데 그 이전에 4‧3 당시 국가가 아동들을 학대가 아닌 그야말로 학살을 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가장 밑바닥에서 짓밟혔던 게 4‧3 시기 아동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지금 아동학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 이전에 풀지 못했던 문제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아서 늘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거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4‧3 아동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제주4·3평화공원 안에 설치된 '비설'. 4·3 당시 희생된 모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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