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부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제도가 17일부터 시행된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역 인근 도로. 사건팀
도심부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제도가 17일부터 시행되면서 교통 체계의 일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시범 실시를 한 서울·부산 지역에서는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30% 이상 줄어드는 등 안전 확보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운수업 종사자 사이에선 교통 흐름과 근무 여건을 감안한 합리적인 속도 설계를 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속도에 대한 인식 변화와 운전자의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제도 운영, 도로 구조 개선 등도 과제로 지목된다.
◇안전속도 5030 시행…시민들 "안전이 최우선" 환영"시골에 차 없는 곳은 달려도 상관이 없겠지만, 시내 사람 많은 데는 속도를 낮추는 게 좋지요. 사람이 느리게 걸을 수도 있고 걸음걸이도 다 똑같지 않으니까."(시민 이혜숙(70·여)씨)
"학생 입장에서는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학교 앞은 그런 제한이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해요."(고등학생 이소정(18)씨)
이날부터 시행되는 '안전속도 5030'에 대다수 시민들은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도에 따라 전국 도시의 차량 제한 속도는 일반도로 시속 50㎞, 이면도로 시속 30㎞로 낮아진다. 제한 속도를 20㎞ 이하 초과하면 범칙금 3만원(과태료 4만원), 20~40㎞ 초과하면 범칙금 6만원과 벌점 15점(과태료 7만원)이 부과된다.
기존 도심부 일반도로 제한속도는 편차 1차로의 경우 시속 60㎞, 편도 2차로 이상은 시속 80㎞였다. 이면도로는 어린이보호구역(시속 30㎞)을 제외하고 제각각이었다.
제도는 이날부터 시행이지만 정부는 지난 2017년 부산 영도구, 2018년 서울 4대문 지역에서 제도를 시범 적용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을 개정한 것은 2019년 4월 17일로, 제도 도입까지 2년의 유예 기간을 둔 바 있다.
도심부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제도가 17일부터 시행된다. 서울역 버스정류장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운수업 종사자들 "제도 공감…탄력적 운영 등 보완은 필요"제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운전자들, 특히 운수업 종사자들의 경우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일률적 속도 제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인근에서 만난 택시기사 기모(65)씨는 "손님 중 70%는 제 시간에 빨리 도착하길 원한다. 출근시간에 30㎞, 50㎞ 지키기가 쉽지 않다"며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 연세 있는 손님들이 병원을 가는 경우 달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씨는 "점진적으로 승객들도 변화가 생기면 택시기사들도 조금 변화되지 않겠나"라며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책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택시 뿐만 아니라 도착 시각을 다투는 택배 등 운송업 종사자들도 우려 섞인 시각을 보였다.
농산물을 차로 배달하는 최모(46)씨는 "굉장히 시간을 촉박하게 다투는 입장이고, 납품을 5분 안에 넘어가야 하는 그런 요청을 많이 받는다"며 "(제도 시행에서) 도로 상황이나 여건을 감안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택배업을 하는 윤모(44)씨는 "속도가 낮아지는 것은 안전적으로는 맞지만, 심야시간대 교통량이라든가 행인이 없을 경우는 약간 완화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맞다"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모(73)씨는 "과속하지 않고 '5030'을 잘 지킨다면 사고는 90% 이상 줄어든다고 본다"며 "다만 도로 폭이 4차선 이상인 곳, 사람 통행이 빈번하지 않고 차량 소통이 잘 되는 곳에서는 탄력적으로 제도가 적용되면 긍정적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도심부 속도를 낮추는 '안전속도 5030' 제도가 17일부터 시행된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역 인근 도로. 사건팀
◇현장 안착과 공감대 형성 등 관건안전속도 5030은 시범 실시에서 일부 효과를 보인 바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는 보행자 교통사고 중상자가 30.0% 감소했다. 부산 영도구의 경우 지난해 보행 사망자는 47명으로 전년(71명)보다 33.8% 줄어들었다.
차량 흐름 역시 큰 악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도로 제한속도를 시속 50㎞로 시범적으로 낮춘 12개 도시를 보면, 평균 13.4㎞ 구간을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2분에서 44분으로 2분 늘어나는데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1개국에서는 5030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인 것으로도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현장 안착과 운전자들의 공감대 형성, 도로 상황을 감안한 힙리적 제도 운영 등을 주문했다.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유정훈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5030 제도에 공감하지만 문제는 구체성"이라며 "각 도로의 특성, 보행 환경을 고려해서 50㎞를 적용하거나 지금처럼 60㎞를 유지하는 합리적인 '핀셋' 구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명지대 박병정 교통공학과 교수는 "도로 구조 개선과 자연스럽게 속도를 감속할 수 있는 표지판 등 물리적인 방법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속도를 낮춰야 한다는 인식 전환과 홍보 및 계도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며 "5030을 기본으로 하되, 교통 흐름과 통행 상황을 감안해 60㎞를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지역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